丙子胡亂

▣전쟁의 불씨 모문용

동천 2016. 9. 4. 06:03

▣전쟁의 불씨 모문용


■1618년 이래,후금의 누르하치가 연전연승하여
■1619년에 사르후가 무너지고,
■1621년에는 遙陽,
■1622년에는 廣寧 등 정치, 군사적 요충지가 무너지게 되자
명나라는 요하 동쪽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였고
그것은 명나라와 조선을 잇는 육로가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1621년, 요양이 후금에 함랃되자
■1621년 7월, 모문용은 220명의 병력을 이끌고 조선으로 잠입,
장차 전쟁의 불씨로 작용하게 된다.
■1622년,광해군은 후금 침략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문용을 설득하여 가도로 들여보냈으나,
요동지역에서 탈주해오는 漢族들을 규합, "요동 수복"을 표방하며
동강진을 설치, 배후에서 후금을 견제하는 전진 기지로 삼았다.

■이렇게 되자, 明`朝`金 三國 間에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후금의 입장에서는 모문용과 동강진은 [목에 걸린 가시]였다.
明의 입장에서는 반정 정권이 못마땅하지만
"기어이 오랑캐를 섬멸하는 데 동참하겠다"는 조선을 이용하려 했고,
숭명배금의 기치를 내걸고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의 입장에서는
명나라로부터 반정을 승인받고 책봉을 받아내는데
모문용을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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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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