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全羅 勤王軍

동천 2016. 9. 4. 06:46

▣全羅 勤王軍


■1637년 1월 4일,
전라감사 이시방 휘하에서
선봉장으로 종군했던
金俊龍은 병력 2천 명을
이끌고 수원 光敎山으로
진출, 진영을 설치하고
적 돌격을 차단할 수
있도록 목책을 설치하고,
火器手를 前面에,
射手와 창검병을
후면에 배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1637년 1월 5일, 청군 지휘관 楊古利가
5천의 병력을 이끌고 공격해오자 집중사격을 가하여 격퇴했다.

■1월 6일, 楊古利는 병력과 화력을 증강하여 공격해 왔다.
선방하던 조선군은 저녁 무렵 청군이 광교산 후방으로 우회하여
광양현감 崔澤이 맡고 있던 지역으로 돌진하자 혼전양상으로 돌변했다.
이 틈에 朴義라는 명포수가 적장 楊古利를 사살하자 청군 진영은
급격히 동요했다.

병자호란 개전 이래 거둔 최대의 승리였고
광교산에서 날아온 김준용의 승리소식에 조정은 환호했다.

그러나 김준용은 계속 버틸 수 없어 수원 남쪽으로 철수하였고
남한산성에서는 환호도 잠시뿐 다시 기다림의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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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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