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中共軍의 5月攻勢

이에 맞선 미 제10군단의 방어편성은 홍천 서측방의 高地群으로부터 인제에 이르는 60km 정면을 담당, 좌로부터 미 1해병사단, 미 2사단, 국군 5, 7사단 순으로 배치하고, 그 우측에 국군 3사단이 인접하여 적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중공군의 집중공격을 받은 우리의 제5, 7사단은 한계리에서 완강한 저항을 계속했지만 결국 돌파되었으며 우측의 국군 제3사단 방어선도 돌파되어 평창 ~ 강릉선으로 후퇴하였고, 동해안 방면의 국군 제1군단도 대포리에서 강릉으로 후퇴하게 된다.
☞5월 18일,국군 제 5, 7사단 정면이 돌파되면서 미 2사단은 우측방이 노출된 상태에서 중공군의 3面攻擊을 받게 되자 예하 38연대는 중공군 1개 사단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Bunker고지를 확보하여 적 돌파구를 제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날 하루의 방어전에서 미 제38포병대대는 당시 기준탄약보급량의 5배에 해당하는 105mm 곡사포탄 12,000발을 사격하여- 이른바 밴플리트 사격-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제압하였다.
☞5월 15 ~ 18일간의 전투에서 미 2사단의 손실은 900명인데 비하여 중공군은 무려 35,000명에 달했으며 국군 제6사단도 사창리 전투의 설욕전을 벌인 용문산 전투에서 중공군 제63군 예하 3개 사단을 격멸하는 대 전과를 올리므로써 중공군의 5월 공세는 작전 개시 4일 만에 저지되어 전선은 5월 20일부터 안정되고 UN군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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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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