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 3. 義兵의 蜂起
邊方의 官軍들이 왜적이 쳐들어 온다는 풍문만 듣고 도망하기 급급하고 首領들은 城을 死地로 생각하고 도주하기 급급하여 백성들은 관군의 敗散에 격분하였다.
무인지경이 된 국토에는 왜적이 財物 掠奪,婦女子 姦淫 등 天人共怒할 만행을 자행하자 鄕民들은 倭賊의 위협으로 부터 가족과 재물을 수호하겠다는 애향심이 勤王精神에 투철했던 향리 儒生과 손을 잡음으로써 自然發生的인 武力抗爭 集團으로서의 義兵集團이 성립되었다.
☞하여, 4월 22일 경상도 玄風 儒生 郭再祐의 봉기를 시초로 ☞충청도 옥천의 趙憲 ☞경상도의 정인홍,김면,손인갑,김준민 ☞전라도의 고경명,유팽로,김천일,김덕령 ☞함경도의 정문부 ☞義僧 휴정,유정,영규,처영 대사 등이 봉기하였다.
의병들의 대왜항쟁은 1592년~ 1593년에 집중적으로 전개 되었으며 1594년부터 의병활동이 미약해진 것은 ☞첫째,戰局이 차츰 호전되어 관군이 재편성 강화 되었다는 점 ☞둘째,의병들이 관직을 받거나 관군으로 편입되었고
☞셋째,후기 의병은 질적 저하로 조정에 의해 통제하였으며 ☞넷째,연년의 흉농으로 군량 확보가 어려워 자연 해산되었다.
壬辰倭亂時 의병들의 대소 전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활약상이 컸던 1592~1593년 間의 전투를 소개하며 여러 전투에서 決死의 氣槪로 抗拒한 先烈 義兵들은 오늘날 우리들로 하여금 그 英風에 숙연히 머리 숙이게 한다.
參考文軒: 壬辰倭亂史.義兵運動史.2作戰司精神敎育敎材 等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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