査頓이라는 말의 유래
尹瓘(1,040~1,111년)은 고려의 문신이며 군인이다. 그는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의 4대손으로 아버지 윤집형은 검교소부소감을 지냈으며 외가는 신라의 왕족이었다.
숙종때 2차 여진족 토벌당시는 원수로 출정했으나 실패, 講和회담을 하고 되돌아왔다. 그 뒤 특수부대 별무반을 창설해 오연총과 함께 병력을 훈련시키고, 1,107년 예종2년에 3차 토벌 때 대원수에 임명돼 부원수 오연총과 더불어 척준경,왕자지등과 함께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토벌한 뒤 북방에 9성을 쌓고 여진족이 재 침략하자 이를 진압하고 1,108년(예종3년)에 개선했다.
그런데 사돈이라는 말의 유래는 이 尹瓘 將軍으로 인해 생겼다.
도원수 尹瓘 과 부원수 吳延寵은 양가 자녀가 혼인한 査頓 관계다. 어느날 윤관은 청혼하려고 잘 빚어진 家釀酒를 하인에게 지게하고 오연총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전일 밤에 내린 폭우로 물이 불어나 개울을 건널 수 없었다. 발을 구르고 있는데 개울 건너편의 오연총도 술통을 옆에 두고 발을 구르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후 두 사람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다래나무(査) 조각을 구해 마주 보고 걸터앉았다.
먼저 윤관이 술잔을 비운뒤 개울 건너 오연총에게 잔 권하는 시늉을 했다. 오연총 역시 머리 숙여 술잔을 받는 예를 표시한 뒤 스스로 채운 술잔을 비웠다.
이렇게 둘은 다래나무에 걸터앉아 서로 머리를 숙여 술잔을 주고받는 시늉을 하며 거나하게 마셨다. 물론 주고받는 술잔속에 정이 무르익어 許婚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자식사이의 혼인을 제안할 때는 "사돈하자"는 말이 유래됐다고 한다.
*사돈의 뜻은 "다래나무"를 뜻하는 査와 "머리를 숙이다"는 뜻인 頓首의 합성어로 다래나무에 앉아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이다.
한국사 인물열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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