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端]의 悲劇 ▣[安端]의 悲劇 ■ 安端의 사연은 더 기막히다. 丙子胡亂 당시 붙잡혔던 그 또한 심양을 거쳐 北京으로 들어가 사역되었다. 安端은 1675년(숙종1년) 탈출을 시도한다. 당시 南邦에서 吳三桂 등이 반란을 일어켰는데, 마침 그의 主人은 진압군으로 차출되어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자 감시가 .. 丙子胡亂 2016.09.21
▣[安秋元]의 悲劇 ▣[安秋元]의 悲劇 ■ 피로인들에게 드리워진 고통과 상처의 그림자는 처절하고도 길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속환의 가능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던 와중에도 귀향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종대에 도망쳐온 [安秋元]과 숙종대에 도망쳐온 [安端]의 사연은 특히 처절.. 丙子胡亂 2016.09.21
▣走回人들의 悲劇 ▣ 走回人들의 悲劇 ■1637년 8월, 용골대는"심양에서 도망치고 있는 피로인이 매일 1천 명에 이른다"면서 심관에 머물던 소현세자에게, 때로는 직접 한양으로 사신을 보내 走回人(도망친 사람)들을 잡아 보내라고 협박했다. ■1641년,유래없는 大旱災가 들자 "주회인들을 도로 붙잡아 보냈.. 丙子胡亂 2016.09.21
▣歸還女의 悲劇 ▣歸還女의 悲劇 ■여성 피로인들의 고통은 속환이나 도망하여 조선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슬픔과 비극은 그치지 않았다. ■1638년 3월, 조정에는 상반된 내용을 담은 두개의 호소문이 올라왔다. 신풍부원군 張維와 前승지 韓履謙이었다. 장유는 자신의 외아들 張善徵과 속환한 며느리가 .. 丙子胡亂 2016.09.19
▣人間市場 ▣人間市場 ■속환 방식은 몸값을 마련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私贖과 公贖으로 구분되었는데... ☞公贖의 대상자는 종실,인조를 호종했거나 남한산성을 지키던 군사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으로 제한했다. 남한산성을 지키던 군사들과 그 가족들은 [국가 유공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 丙子胡亂 2016.09.19
▣人間市場 ▣人間市場 ■ 1637년 4월, 용골대는 소현세자를 통하여 "청군이 조선으로부터 완전히 철수한 뒤부터 심양에서 시작한다" 는 贖還方針을 통보했고, 소현세자는 이를 4월13일 본국에 보고했다. 이는 전란으로 혈육의 생사를 알지못해 고통받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끈]을 품게 .. 丙子胡亂 2016.09.19
▣女性 被虜人들 ▣女性 被虜人들 ■ 청군 장수들의 첩으로 전락하여 심양에 도착한 여성 피로인들에게는 뜻밖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군 장수들의 만주족 본처들의 투기심은 조선에서 온 여성 피로인들을 참혹하게 학대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조선 여인들에게 떠거운 물을 끼얹거나 혹심한 고문.. 丙子胡亂 2016.09.19
▣被虜人들의 慘狀 ▣被虜人들의 慘狀 ■피로인들은 수백명 단위로 열을 지은 채 엄중한 감시 속에 심양을 향해 행군했다. 탈출을 우려하여 연로에서 조선인 접촉이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고 탈출을 시도하는 피로인들에게는 철퇴가 날아들고 처참한 살육이 자행되었다. 피로인들의 수가 .. 丙子胡亂 2016.09.19
▣人間인가? 商品인가? ▣人間인가? 商品인가? " 우리가 끌고 가는 被擄人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탈출에 성공하는 자는 불문에 붙인다. 하지만 일단 강을 건너 한 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다음에 조선으로 도망쳐오는 자는 조선이 도로 잡아 보내야 한다." ■1637년 1월, 청 태종 홍타이지가 항복을 .. 丙子胡亂 2016.09.11
▣敗戰 問責 ▣敗戰 問責 ■항복했던 직후, 도성으로 돌아온 백성들 앞에 보이는 것은 시체가 나뒹굴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처참한 모습 뿐이었다. 절망 속에 눈에 핏발이 설 수밖에 없었던 백성들은 청군에 대한 적개심과 아울러 대의명분을 앞세운 斥和臣들의 경거망동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망가.. 丙子胡亂 2016.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