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走回人들의 悲劇

동천 2016. 9. 21. 05:08

▣ 走回人들의 悲劇

■1637년 8월, 용골대는"심양에서 도망치고 있는 피로인이
매일 1천 명에 이른다"면서 심관에 머물던 소현세자에게,
때로는 직접 한양으로 사신을 보내 走回人(도망친 사람)들을
잡아 보내라고 협박했다.

■1641년,유래없는 大旱災가 들자
"주회인들을 도로 붙잡아 보냈기에 하늘이 노했다"며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갔다.
흉흉한 민심에 놀라 인조와 조정은
유시문을 내려 쇄환 조처의 부득이함을 이해 해달라고 호소했다.

"슬프다.
무고한 우리 백성이 이역에 잡혀가
골육을 그리워한 나머지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하여 돌아오기를
마치 그물을 벗어난 토끼가
숲속으로 뛰어들듯 했다.
하지만 남한산성의
약조가 엄중하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몸을 숨기느라 바빠 이미
본업도 잃었는데 한꺼번에
찾아내 도적 대하듯 묶어보내니
자식과 부모,남편과 아내가
이별하고 있다.

헤어질 때 정리가 극에 이르러
스스로 목메어 죽기도 하고,
일부러 굶어 죽기도 하고,
심지어 손과 발을 잘라
이별을 보류하려는
者도 있다.

추위와 굶주림에 괴로움을 당하고,
길이나 옥중에서 죽는 자도 많이 있다.
관리들이 엄한 독촉에 쫓겨 처벌받는 것이
두려워 隣族을 침노하는 등 해독이 온마을에 퍼졌다.


■1642년 2월,
창성과 삭주 등 압록강 줄기의 上`下에 백골들이 널려 있고
그 사실을 보고 들은 사람들 가운데 눈물 흘리지
않은 자 없다며 참혹한 실상을 증언한바 있다.

走回人들 가운데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히거나,
조선 입국이 좌절되어 다시 돌아오면 발뒤꿈치를
잘려야 했던 끔찍한 고통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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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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