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歸還女의 悲劇

동천 2016. 9. 19. 06:51

▣歸還女의 悲劇


■여성 피로인들의 고통은 속환이나 도망하여
조선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슬픔과 비극은 그치지 않았다.

■1638년 3월,
조정에는 상반된 내용을 담은 두개의 호소문이 올라왔다.
신풍부원군 張維와 前승지 韓履謙이었다.

장유는 자신의 외아들 張善徵과 속환한 며느리가
이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失節한 며느리에게 선조의 제사를 계속 맡길 수 없으니
아들이 새장가를 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한이겸의 사연은 장유의 호소 내용과 정반대였다.
"자신의 딸이 속환되어 왔는데,사위가 딸을 버리고 새장가를
들려고 하는 것이 원통하다"며 인조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한 사람은 시아버지의 입장에서,
다른 한 사람은 친정아버지의 입장에서
전혀 상반된 호소를 하고 있었다.

영의정 최명길은
"끌려간 여인들 가운데
청인의 회유와 협박에도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여인도 있었고 급박한 전시상황에서
몸을 더렵혔다는 누명을 쓰고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고 하면서 무조건
"실절한 여자"로 매도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인조실록]에 최명길을 비판했던 史評엔 이렇게 썼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포로가 된 부녀자들은 비록 본심은 아니었을지라도
변을 만나 죽지 않았으니 결국 절개를 잃은 것이다.
그러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기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이렇듯 상반된 주장은 끊이지 않았고
사대부가의 [귀환 여성]들은 대부분 버림받고 말았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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