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옛날 우리가살던 추억어린 사진◈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년 4월8일 원구단 방향에서 바라본 조선호텔의 옛모습. 1970년에 헐리고 이 자리에 현대식 고층건물(롯데호텔)이 들어섰다
1959년 3월1일 허니문 카를 본따서 만든 이동 어린이 놀이기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1959년 3월2일 50년대 말 명동거리의 패션. 양장차림의 서양여인과 한복차림에 쪽진 머리의 한국여성이 대조적이다 1959년 3월3일 풍문여자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거행되고 있는 교문밖에는 꽃다발 행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59년 4월 6일 유치원생들과 학부모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
1959년 4월14일 비가 내리는 광화문의 한 가게 앞에 비닐우산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959년 4월14일 우량아선발대회에서 한 심사위원이 참가한 어린이들의 앉은키와 몸무게 등을 재고 있다.
1959년 4월18일 덕수궁에 놀러나온 여자 어린이들
1959년 4월15일 급수 리어커가 오면 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15일 수돗물 사정이 좋지않던 시절 급수 리어커가 오면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년 4월 소공동 환구단(원구단) 주변 모습. 환구단 뒤로 반도호텔이 보인다. 환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을 가리킨다.
1959년 4월의 돈암동. 낮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1959년 4월 을지로 입구. 도로에는 버스와 전차가 다니고 있다.
1908년 8월 일제가 설립한 경성동양척식주식회사. 위 사진 오른편에 이 건물 모습이 보인다.
경성동양척식 주식회사 지금은 외환은행 명동본점 건물이 들어서있다.
1959년 4월 종로거리
1959년 8월 미아리 동네 모습. 대체로 낮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다.
1959년 광화문 사거리 주변 모습. 사진 왼쪽에는 서울 시민회관이 건축중이고, 뒤쪽 가운데에 중앙청(구 조선총독부)의 모습이 보인다.
1959년 남대문로 주변 모습. 서양식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1959년 명동거리 모습. 명동거리는 50년대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1959년 서울 중심가 건물 앞에 주차된 다양한 모습의 차량들
1959년 기존의 목조건물을 헐고 준공되어지고 있는 창성동 별관 정부청사 신축지 현장
1959년 명동거리
1959년 서울 을지로 입구. 오른편 맨 윗쪽 끝 건물이 서울시청
1959년 종로 거리. 건물들 사이에 보신각이 보인다.
1959년 종로 거리. 오른편 건물이 화신백화점.
1959년 종로 대로변 모습. 전차가 지나고 있다.
1962년 10월 공사중인 김포국제공항. 1958년 1월 국제공항으로 지정되어 1959년 종합청사를 신축하고 그후 각종 시설의 확충과 기능을 확대하였다.
1962년 3월 서울 명동에 신축중인 유네스코회관 빌딩
1962년 3월 서울 중구 명동에 유네스코회관 빌딩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유네스코회관은 1959년에 착공해 1967년, 8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1959년 4월30일 봄바람을 즐기러 강변으로 외출 나온 주부들.
1959년 5월8일 부랑인 일가족이 종로거리에 누워 구걸을 하고 있다.
1959년 5월12일 제13회 어린이건강심사대회에서 입선한 우량아의 부모들이시상식에 참석해 수상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959년 5월23일 미스코리아와 미스해병 등으로 선발된 미녀들이오픈카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1959년 5월28일 관광업계는 관광객유치를 위해 관광용고급버스를 구입하고 관광버스 시운전 행사를 했다.
1959년 5월29일 자전거 위에 올라가 제1회 국제마라톤 경기대회 골인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과 학생들의 모습.
1959년 5월6일 바느질과 다림질 등 재봉일을 하고있는 50년대 말의 주부들 방안에는 화로도 있다.
1959년 7월 27일 지방선거로 야당의원들이 데모. 서장과 맞붙잡은 김두한 의원
1959년 7월 27일 지방선거로 야당의원들이 데모.
1959년 8월4일 서울 미아리 일대의 50년대 말 모습.
1959년 8월 21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국민학교 학생들
1959년 8월 21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국민학교 학생들.
1959년 8월 26일 야외가설 무대에서 공연중인 시민위안의 밤 무대
1959년 8월 미아리 동네 모습. 대체로 낮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다.
1959년 8월31일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명륜동 주택가 상점 앞을 지나는 주민의 모습
1959년 8월31일 장마로 물이 불어난 청계천벽 천일극장 뒷편에 밀집한 판자촌의 모습 .
1959년 8월4일 여성 피의자가 재판을 받기위해 포승줄에 묶인채 호송관에 끌려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1959년 9월16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서 줄을 이루고 있는 귀성객들.
1959년 9월16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서울역의 귀성객들이 광장에 줄을 이루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모델을 둘러싸고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1959년 9월1일 좋은 앵글의 작품사진을 만들기 위해
1959년 도로 공사 모습
정간 당했던 경향신문이 1959년 6월 26일 다시 속간케 되었음을 알리는 대자보가 경향신문 사옥 앞의 게시판에 나붙었다.
정간당했던 경향신문이 1959년 6월 27일 조간부터 속간케되었다.직원들이 그동안 내려졌던 사기를 사옥 옥상에 다시 게양하고 있다.
1962년 1월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
1962년 1월 시민들이 출근을 하기위해 줄을서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1962년 1월 광화문 아카데미극장 매표소 앞에 영화를 보기위해 나온 시민들의 줄이 이어져 있다.
1962년 1월 눈오는 세종로 거리에 펼쳐진 좌판에서 상인들은 물건을 팔고 있지만 시민들은 무관심한채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1962년 창경원(현 창경궁) 수정궁 앞 연못이 얼어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타며 겨울을 즐기고 있다.
1962년 기찻길 옆으로 판자집이 즐비한 가운데, 아이들이 철로에서 놀고 있다.
1962년 청계천 주변 판자촌
1962년 추운 겨울 세종로에 상주하는 한 노숙자가 근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1962년 기찻길 옆으로 판자집이 즐비한 가운데, 아이들이 철로에서 놀고 있다.
1962년 서울 시내버스 여성 버스차장 모습. 대중 교통수단인 모든 버스에는 여성 버스차장이 근무해 운임 수납 업무와 손님의 승하차를 통제하는 등 안전운전을 위한 보조역을 했다.
1962년 서울 청계천 주변 길가에서 넝마를 줍고 있는 사람들
1968년 6월 도로확장 공사가 되기 전의 효자동
1968년 7월15일 중학입시 무시험 발표
1968년 10월12일 종로3가 창녀촌
1968년 10월1일 서울 모습
1968년 10월1일 서울시청 주변 모습.
1968년 10월5일 초만원을 이룬 추석 귀성열차
1968년 8월24일 악명높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행방불명)
1968년 10월 17일 정강자씨 등 젊은 미술가들이 한강변에서 전위예술을 공연하고 있다.
2003.8.26 한국 최초 행위예술가 정강자. 가수 남일해 누이동생이다.
1968년 11월 29일 운행 70년만에 폐차 처분되어 차고에 몰려있는 서울의 전차
1968년 11월 3일 새벽 3시30분 대구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큰 불.아래 왼쪽이 계성고등학교
서문시장 제3지구 1층에서 연탄 과열로 큰 불. 멀리 동산병원 본관 건물이 보인다.
1968년 봉천동 꼭대기 까지 차곡차곡 들어차 있는 가옥들
1968년 봉천동 주민들이 마술단 공연을 보기위해 공연장 앞에 줄을 서 있다.
1963년 9월 7일, 자하문으로 가는 청운동 언덕길을 달리던 서울 시내버스가 때마침 휘발유를 가득 싣고 고갯길을 내려오던 트럭에 들이받혀 인근 가옥과 충돌하는 바람에 길에서 놀던 어린이 5명중 2명이 즉사하고 승객 39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사고 피해자는 대부분 하교하던 학생들이었다. 사진은 사고현장의 모습
사고현장에 학생들의 가방이 길에 나뒹굴고 있다.
사고현장의 부서진 버스의 내부 모습
사고현장의 부서진 트럭과 버스의 잔해
효자동 야간 도로공사. 대낮의 교통불편을 막기위해심야에 도로포장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인부들
60.4.19 서울 효자동 전차종점에서 경무대로 꺾어 올라가던 데모대가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100여명이 흩어졌다.
1960년 4월 29일 학생데모대가 경무대로 가는 것을 경찰이 최초로 발포한 곳이다. 해무정 앞 지금의 종합청사와 국립박물관 사이 효자동으로 가는 길
서울 효자동 전차종점에서 경무대로 꺽어 올라가던 데모대가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100여명이 쓰러졌다 1968년 6월 도로 확장공사가 되기 전의 효자동
95,10,22 금융실명제 실시후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세일에 나선 괴자금과 5-6공 비자금의 연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자금 보관소로 애용되었던 상업은행 효자동지점
|
'포토로그 > 追憶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69.추억의 생활상 (0) | 2018.08.28 |
---|---|
68.60년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0) | 2017.11.23 |
65. 1910년대 우리들의 모습 (0) | 2017.01.12 |
64.60년대 우리의 모습 (0) | 2016.12.21 |
62.귀한 자료 사진 (0) | 2016.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