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美 8 軍 司令官의 意圖
한편, 워커 將軍은 北傀軍을 어느 線에서 沮止할 것인가를 檢討하고 있었으며,
美 第 25 師團, 第 1 騎兵師團, 오끼나와의 第 29 聯隊, 本國에서 오는 海兵旅團과 第 2 師團戰車大隊 等의 增員節次, 韓國軍의 再編成 속도, 補給品의 揚陸狀況, 海.空軍의 支援 能力과 그 效果에 이르기까지 檢討한 結果,
워커 將軍은
7月17日頃 , 최후저지선을 낙동강-영덕선으로 決定하고, 增員軍이 도착할 때까지 敵의 前進을 小白山脈에서 沮止시킬 필요가 있다고 하는 結論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워커 將軍은 많은 損失을 입은 美 第 24 師團 代身에 7月18日 포항에 上陸하는 美 第 1 騎兵師團을 大田 正面에 投入시켜 玉泉에서 부터 錦山에 이르는 線을 防禦하도록 했다.
그리고 狀況이 有利하게 되면 美 第 1 騎兵師團이 小白山脈에서 敵을 沮止시킬 機會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希望도 갖고 있었다.
이른바 <노근리 住民虐殺 事件 > 이라 보도되었던 것이 바로 美 第 1 騎兵師團의 영동 방어전투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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