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破竹之勢의 北傀軍
* 7月 3日 ; 漢江 防禦線이 붕괴되고 仁川이 피탈된 데 이어, * 7월 4일 : 수원이 피탈된다. * 7월 5일,
스미스 미 특수임무부대가 남진하는 북한군과 최초로 격돌한 곳은 죽미령 고개였다. 이곳에 방어진지를 편성한 스미스 부대원들은 차가운 가랑비를 맞으며 참호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들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 군인을 일본 구마모토 시에서 꿈같은 일상을 즐기던 미24사단 21연대장병 406명과 52지원포병대대 134으로 총540명이었다.
이들이 적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는 북한군은 단지 형편없는 훈련과 무기를 가진 삼류 군대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군들은 단지 국제경찰군 역할만 하고 이른 시일안에 안락한 생활이 보장된 일본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벌어진 죽미령전투에서 이런 생각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한국이란 나라의 자유를 위해 포연 자욱한 전쟁터의 긴박함속에서 미국판 " 태극기 휘날리며 "라고 볼 수 있는 스미스부대 B중대 랜섬 월드포드(Ransom Wolford)와 비질 월포드(Virgil Wolford) 이야기가 있다.
당시 그들의 나이는 16세와 18세에 불과했다. 이 형제는 당시 14세와 16세였으나 부모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자 갈곳이 없던 그들은 나이를 속이고 군대를 택했다. 이런 딱한 사연을 아는 중대원들은 이 어린 병사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러나 7월 5일 죽미령에서 북한군 탱크의 집중포격으로 한 참호속에서 두형제는 서로 꼭 껴안은 채 동시에 전사하고 만다. 이들 슬픈 사연을 안은 형제들과 함께 181명의 전사자를 내고 맥없는 퇴패가 연속된다. * 7月 6日 ; 평택/안성선 崩壞. * 7月 8日 ; 天安이 피탈, * 7月14日 ;公州正面 금강선 崩壞
그야말로 破竹之勢로 밀려오는 人民軍의 戰車部隊 앞에 산산히 부서져 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7月6日傾에 北傀軍 最高司令部는 韓國軍과 美軍이 錦江과 小白山脈의 要地에 據占을 확보할 수 있는 時間的인 餘裕를 주지 않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3次 作戰指針을 下達하게 된다.
高度의 攻擊速度로써 美軍과 國防軍에게 맹렬한 打擊을 가하여 錦江과 小白山脈을 신속히 突破하고, 大田地域에서 美軍및 國防軍의 主力部隊를 포위, 섬멸함으로써 전주-논산- 문경- 울진선의 남부지역을 점령한다.
그리고 金日成은 서울에서 "어떠한 狀況下에서도 반드시 敵의 後方으로 우회하여 포위 섬멸하여야 하며, 특히 夜間作戰을 强化하고 攻擊速度를 한층 더 빨리하라."고 강조하게 된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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