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北傀軍作戰槪觀
☞6月 30日 동틀 무렵,北傀 第 3 師團 8 聯隊는 포병과 전차포의 支援射擊下에 서울 東南方 서빙고 나룻터에서 주로 수영을 하거나 20~30 名이 승선한 나룻배로 渡河를 開始했다.
渡河한 北傀軍은 漢 江南岸의 韓國軍을 축출하고 사평리 남쪽 高地上에 陣地를 구축한 後 더 이상 전과를 확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 6月 30日 正午, 美 陸軍大學에 유학중이던 丁 一 權 將軍이 歸國하여 蔡秉德 參謀總長과 교대하고, 蔡 總長은 유명무실한 嶺南地區 戰鬪司令官에 任命하게 된다.
☞7月 1日 04;00 時, 北傀 第 4 師團은 5 聯隊를 선두로 서울 西南方으로 渡河하여 영등포에 대한 攻擊을 하였지만 이번에는 前과 같이 쉽게 점령되지 않았기 때문에 全兵力을 投入시켜 攻擊한 끝에 2日 後인 7,3,08;00 時에 영등포를 점령하고 만다.
이 영등포 攻.防戰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北傀 第 3 師團은 서빙고에서 渡河를 끝냈고,
☞7月 3日 저녁 무렵,北傀 第 6 師團은 6 대의 戰車를 先頭로 1 個 大隊로써 仁川을 점령하게 된다.
☞이리하여 7月4日 아침 現在 北傀軍의 全般的인 作戰態勢는 最精銳의 第 1, 第 3, 第 4, 第 6의 4個 師團과 기갑師團을 영등포 一帶에 集結시켜, 主攻을 서울-大田-釜山 方向으로 공격할 준비에 着手했고,
☞春川을 경유, 西進한 第 2 師團은 가평-서울 東南方 30km에 위치한 경안리-龍仁을 向하여 南進中에 있었고,
☞中部戰線에서는 새로 戰線에 投入한 北傀 第 15 師團이 原州에서 西進하여 여주를 攻擊했으며, 北傀 第 7 師團은 원주-제천-충주를 向해 南下하고 있었다.
☞그리고 東海岸에서는 北傀 第 5 師團이 울진을 向하여 南進하고 있었고, 豫備인 北傀 第 13 師團은 서울로 推進中에 있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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