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漢江防禦線 決戰
■48.漢江 防禦線 崩壞6월 28일 밤부터~29일까지는 방어선 각 곳에서 중대규모의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
노량진에서 동작동을 연하는 혼성 제7사단의 방어정면에는 아군의 복장을 한 북괴군 1개 중대가 도강해 왔다. 처음에는 서울에 남겨진 아군인 것으로 생각했다가 적이라는 것을 알고 전투가 벌어져 혼전하였으나 金用淋 중대의 분전으로 이를 격퇴하고 상당수의 무기를 노획했다.
그리고 최 우익의 沙坪里나 좌익의 오류동과 소사 정면에서도 이 같은 가벼운 전투가 있었는데 북괴군은 전 전선에 걸쳐 위력정찰을 개시한 것으로 주력부대의 도하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 영등포의 攻防 한강 남안에서의 교통 요충지인 영등포가 한강 방어선의 중심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단선교가 파괴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 북괴군의 본격적인 도강은 6월 30일 미명,북괴 제3사단은 맹렬한 포병과 전차포의 일제사격과 동시에 공격이 시작되었다. 김포지구에서, 서빙고 부근에서 1개 대대의 북괴군은 2~30명이 탈 수 있는 목선에 분승하거나 또는 헤엄쳐서 흑석동으로 도강했다.
수도사단 정면에서도 여의도를 둘러싼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제8연대장 서종철 대령은 7월 3일 아침까지 북괴군이 비행장에 침입할 때마다 5차례나 영등포를 사수하고 있었다. 이 전투를 한국 전쟁사에서 [제8연대는 5일간에 걸쳐 적을 저지하고, 아군에게 병력을 수습하여 전선을 정비를 위한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도강 병력은 북괴 제3사단 제8연대의 1개 대대로 판단되었고 교두보를 확보하자 국군 제9연대의 일부를 돌파 하고 노량진의 水道高地를 탈취했다.
☞ 유재흥 장군이 지휘하는 제7사단 제9연대장 윤춘근 중령은 7월 1일 아침 적의 교두보인 수도고지에 대해 제1대대로서 정면에서 제2대대로서 동작동 방향에서 포위형태로 역습토록 했으나 때마침 가랑비가 올듯한 날씨라서 미 공군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북괴의 포병 탄막사격으로 역습은 실패하였고 적이 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서울공업고등학교에 육박하자 유재흥 사단장은 제25연대 일부로써 반격했지만 대세는 어찌할 수 없어 사령부는 그날밤 안양으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석동 뒷산에 남은 윤춘근 중령은 북괴군 대부대가 단선교를 따라 도강 중이고 재목을 맨 수많은 철도원과 서울 시민이 용산역 부근에서 나타나 단선교에 목판을 깔기시작했다. 이 작업이 완공되면 T-34전차의 도강이 가능해 질 것이고 그것은 바로 한강선의 전면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윤 중령은 박격포화를 집중했다.
또한 노량진 뒷산에서 같은 정경을 관측한 박기병 대령은 박격포와 중기관총으로 철교를 縱射하여 북괴군의 교량 보수작업은 중단되었다.
북괴군이 한강 방어선의 바로 정면에 해당하는 흑석동으로 강행 도강해서 수도고지를 목표로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단선교의 보수작업을 엄호하기 위해 취한 것이라 판단된다.
이렇게 해서 7월 4일은 저물어 갔다.
제 7사단 제9연대장 윤춘근 중령은 6월 25일 남침 1일째에 한나절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抱川 정면의 주저항선을 돌파당한 책임을 느끼고 한강선 방어에서만은 북괴군의 돌파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투혼으로 7월 3일 아침까지 5차례나 침입할 때마다 역습으로 격퇴하고 진지를 사수학고 있었다.
또한 북괴 제4사단의 일부는 蘭芝島를 지나 증산 부근에 도강하고 수도사단의 좌측 배후에 육박했고, 김포비행장 부근의 적은 오류동과 소사를 향하여 남하했다.
채병덕 참모총장은 맥아더 원수의 전선 시찰 때 상황 설명이 합당치 못해 걱정하다가 6월 30일 미명에 북괴군이 흑석동 정면에 도강한 것을 알자 ADCOM 단장 처어치 준장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제7사단에 반격명령을 내리는 한편 작전국 근무인 공국진 중령에게 육군본부 요원을 지휘시켜서 독전반과 대전차 육탄공격대 를 편성하고 후퇴해 오는 부대의反轉이나,전선의 전투를 독려시켰다.
또한 육군본부의 직활부대에서 지원자를 모집해서 유격대를 편성하고 서빙고 부근에서 서울에 잠입시켜적 후방의 교란을 꾀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퇴세를 만회할 효과는 없이 최후의 전투 지도가 한강선이 무너지는 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강 방어선은 우익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7월 1일, 林善河 대령이 지휘하는 임시 제2사단은 북괴의 화력에 압도되어 각 곳에서 침투당하고 붕괴되기 시작했다.
각 부대는 각자ㅏ의 생각대로 果川방면으로 후퇴하기 시작했으나 북괴군은 추격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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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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