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누구인가/家門을 빛낸 先祖

3. 天降紅衣將軍 郭再祐

동천 2009. 7. 21. 12:05

 義兵 의 고장 의령(郭再祐 將軍 신도비)2010.9.24

 定巖 郭 先生 神道碑

 郭再祐 將軍 保修한 生家

 忠翼祠 임진외란때 紅衣將軍(곽재우) 와 휘하 17將令과 무명의병들의 위패를 모신사당

 

 

 忠翼祠  竣工時 故 박정희 대통령 생전모습

 

 

 

 

 

 

 

義兵塔  紅衣將軍 郭再祐 와 揮下 17將令을 상징과 양기둥은 전의충전하는 義兵의햇불을 상징

 





天降紅衣將軍 郭再祐 



朝鮮의 義兵將으로 이름난 <18世祖> 郭再祐"는 관찰사 "월(越)"의 세째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영남학파의 거두 조식(曹植)에게 學文을 배우고

1,585年(선조 18年) 正試文科에 급제했으나 王의 뜻에 거슬린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1,592年(선조 25年),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붉은 구름무늬 비단갑옷을 입고 투구에 白金 날개를 달아 千里駿馬인 白馬를 타고 나타나 義兵을 일어키니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天降紅衣將軍이라불렀으며, 그는 宜寧 . 三嘉 . 草溪 . 昌寧 等 嶺南一帶에서 크게 武功을 세우웠다.

정유재란 때에는 慶尙左道防禦使에 승진, 慶南 昌寧에 위치한 火旺山城을 지켰으며,

광해군 때 수차에 걸쳐 경상도 병마절도사. 수군 통제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했다가 뒤에 함경도 관찰사로 나갔으나,혼탁한 朝野의 기강이 문란함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은둔생활로 들어갔다.

그는 광해군에게 直言했다가 한때 유배되기도 했으며,詩文과 글씨에 능하여 "망우당집(忘憂堂集)"을 남겼다.



朝鮮 後期

*  이 밖에 학자로 유명한 "종석(鐘錫)"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폐기와 조약체결에 참여한 매국적신(賣國賊臣)들의 처형을 주장하는 상소(上疏)를 올렸고,

*  韓.日 合邦이 되자 거창에 은둔하다가 "김창숙(金昌叔)"과함께 萬國平和會議에 독립호소문을 보낸 것이 탄로나 옥고(獄苦)를 치렀으며,

* 1963年 建國勳章이 추서되어 先朝들의 뒤를 이어 나라에 공헌하고 家門을 빛내 명문의 후손임을 확인 시켰으며.

이러한 선조님의 거룩한 뜻을 이어나가도록 家門의 訓을 < 忠孝世業, 淸白家聲> 으로 하고 있다.

* 조선시대 때 郭氏의 文科 급제자 수는 57名이며,

본관별로는 현풍(玄風)이 30명, 청주(淸州) 14名, 해미(海美) 4名, 선산(善山)과 풍산(風山)이 각 3名이고, 본관 미상이 3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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