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兵法家들] 프랑스 신부 마이오는 이미 1772年에 孫子兵法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유럽에 소개하였고 군사 천재라는 나폴레옹도 프랑스 번역본 孫子兵法을 애독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영어 번역본은 1905年에 출간되어 오늘날에는 美軍의 교범중 FM 3-0작전(Operation)2001년판의 제3장 첫머리에는 孫子兵法 영문판(The Art of War)의 한 구절이 인용돼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독자를 갖고 있는 孫子兵法은 우리나라에서도 군사분야의 대표적 서적으로 취급 받았고 三國史記 內容 中에 孫子兵法과 관련이 있는 문구가 나오는 걸로 봐서 三國時代에 이미 孫子兵法이 보급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高麗時代에는 필독서로 간주했고 朝鮮時代 以後에는 武科試驗 科目에도 포함됐다. 수양대군은 孫子兵法의 주석서를 출간한 일이 있고 中國의 孫武子直解를 그대로 펴내거나 中國의 여러 孫子兵法 주석서를 통합한 "11가지 손자"를 국내에서 간행하기도 했다. ![]() 우리나라 손자병법 주석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조선 말기 고종때의 武臣이었던 조희순(1814~1890)이 자신의 병법 지식을 정리하고 그의 아들에게 병법을 가르칠 목적으로 1869년 손자병법의 해설서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孫子髓"(손자병법의 정수라는 뜻)이다. 兵聖 孫武, 그에 關한 이야기는 이렇듯 많기도 하지만 여기서 論하고자 하는 것은 孫武가 아니라 한 때 孫武가 스승으로 모셨으며 <司馬法>의 兵書를 남긴 司馬穰苴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