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戰爭秘史

■76.多富洞 戰鬪

동천 2010. 7. 1. 08:00

■76.多富洞 戰鬪

北傀군의 작전기도는
8月 攻勢의 主攻을 大邱正面으로 指向하는 同時에
영산~밀양 方面을 突破하여 경부선을 차단하려 하였다.

이에 따라 美軍 正面의 北傀 第1軍團은 南으로 부터
第6, 第4 ,第10, 第3師團 等 4個 師團을 投入하여
大規模 渡河作戰을 개시한 결과
北傀 第 4 師團은 "영산"까지 進出하였고
北傀 第 3, 10 師團은 "玄風" 方面으로 부터
大邱 西南方을 공격하여 大邱를 고립시키려 하고 있었다.



따라서 낙동강 방어전이 시작된 1950년 8월 들어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은 대구 북쪽의 왜관 일대였다.

8月14日아침, 왜관 西北方地域에
北傀의 4 個 師團과 기갑부대의 約 4 萬 餘名에 달하는
大 兵力이 대구 방향에 集重 투입되었고


이에 맞선 한국 제 1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대구 북방 다부동을 중심으로 328고지,유학산 등에서 20여일간에 걸친 격전 끝에 8월말 끝내 북괴의 공격을 차단하는 데 성공하면서 낙동강전투승리의 단초를 열게 된다.

더구나 8月 14日은
8月 攻防戰 中에서도 戰鬪가 가장 치열했던 날로
第 8 軍은 四方八方에서 벌어지고 있는 狀況에 대처해
나가기에 精神이 없었다.

하여,
第 2 次 大戰 時의
노르망디 上陸作戰에서와 같은 "융단폭격"을 하기로 決定하고

8월16日
요꼬다와 가데나에서
출격한 B-29
5 個群 98 대는
왜관 西北 5.6 x 12 km
(67.2 평방km)지역에
11;58分 부터 26 分間에
걸쳐 900 톤을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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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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