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洛東江 防禦線 形成
워커 장군은 재편성 중이던 美 第 24 師團을 7월 24일 진주-거창-함양 일대를 급하게 투입했다. 北韓 第 4師團이 서부 경남 쪽으로 접근해 왔기 때문이다.
또하나의 위협요소는 晉州-馬山-釜山으로 向하던 北傀 第 6 師團이 하동 진동리 고개마루에 출현하자 상주에 있던 미군 제 25사단을 열차로 급하게 이동시켜 8월 3일까지 馬山에 투입했다.
北傀軍의 主攻이 大邱로 指向되어 있고, 大邱 正面의 西쪽 과 北쪽 지역에서 6個 師團이 投入되어 있다는 것을 탐지하고 있었는데,
서부경남이 뚫리면 마산-부산이 차례로 함락될 위험이 높았기 때문에 美軍 2個 師團이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만큼 소백산맥에 있던 방어선은 급하게 낙동강선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狀況下에서 8月 4日 아침, 國土의 92%를 北傀에게 내어 주고, 8 % 로 쪼그러들은 낙동강 방어선이 형성되면서 왜관~영덕을 연하는 北側面은 韓國 1,6,8,수도사단이 담당하고, 왜관~남지읍~진해만을 연하는 西側面은 美 1기병, 24, 25사단이 담당하여 결사항전을 하게 된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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