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兵法家들] 이렇게 하여 제나라는 양저에 의해 구제되었지만 후에 또 양저에 의해 제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물론 戰功은 후하게 시상해야 하지만 이것이 지나쳤을 경우에는 큰 화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B.C.481년, 양저의 자손으로써 제나라의 대신이었던 田常이 왕 簡公을 죽였을 때에는 전씨의 토지는 왕이 사유하고 있는 토지보다 더 광대하였다. B.C.386년에는, 전씨 가문은 그 토지를 점점 넓혀 가다가 드디어 田和가 왕 康公을 추방하고 스스로 제나라 왕위에 올라 威王이라 칭하게 된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