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戰爭秘史

■101.가자 北으로!

동천 2011. 8. 2. 11:46



■101.가자 北으로!

☞北進과 정일권 參謀總長의 苦惱

東海岸을 질주한 韓國軍 第1軍團長 김백일 將軍은
美軍으로 부터<로켓軍團>이라는 愛稱을 들으면서
시시각각 38線에 접근하여 갔다.

美 第8軍의 主力도
9月 28日 서울을 수복,
의정부지역까지 진출해
있던 美 第10軍團과
교대하여 38線을 따라
전개했다.

이 무렵, 丁 總長은
맥아더로 부터 直接
한명의 兵士라도 38度線을 넘어서는 안된다.
워싱턴 정부가 命令할 때까지 38線 남쪽에서 대기하라.
는 注意를 받았고,


李承晩 大統領으로부터는
北傀가 38度線을 파괴한 이상,
38線은 法的으로 인정할 수 없다.
統一의 기회는 이때뿐이다.
北進하여 祖國의 統一을 실현하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다.
그러므로 염려할 필요없다.
北進을 계속하여 단호히 祖國을 統一하라

嚴命을 받아 丁 總長은 혼자 고뇌에 잠겼다.

그러고 있던 차에,
第 1 軍團의 선두부대인 第 3 師團 이종찬 將軍 麾下의
第 23 聯隊가 38度線 北方 600 야드 地點의 高地에서 맹렬한 사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부대 안전을 위하여
600 야드 거리를
진격하거나
600 야드 거리를
철수하는 양자 택일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때다 싶어
政治的인 문제가 아니라 戰術的인 문제이므로
전진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맥아더 將軍에게 건의,
승인되어 前進 命令을 내리게 된다,

이리하여
10月 1日 10;00 時 頃.
北傀가 완강히 저항하는
600 야드 前方 高地를 탈취함으로써
國軍 第 1 軍團 예하 3 師團 23 聯隊長
김종순 大領이 38度線을 第1着으로 通過하게 되며,
이를 記念하여 <10月1日 國軍의 날>을 제정하게 된 것은 10월 1일에 조국 통일을 염원한 북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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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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