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漢山城

▣丁卯`丙子胡亂 敎訓 [27]

동천 2013. 1. 5. 15:17

▣丁卯`丙子胡亂 敎訓 [27]



정묘`병자호란의 배경은
청나라의 중원 정복이었고,
중원으로 가기전에 배후를 먼저 제압해야만 했다.
이 전략 역시
한국-만주-중국간에
수천년간 변함없는
공식이었으나 조선은 이를 무시했다.

또하나는
정묘호란을 겪고도 淸나라의 군사력을 무시하고
淸이 보낸 국서를 받지 않을 정도로 그들을 모욕했다.

淸軍의 쾌속 진격과 이를 뒷받침하는 보급체제는
과거 몽골군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淸군이 침공했다는 보고서가
조정에 도착한 날이 12일이었는데,
이때 청군은 이미 개성까지 도달하였고
선발대는 벌써 모래내까지 진출함으로써 인조가 강화로
파천하려는 길을 끊어 12월 14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청군이 이룩한 전술적 성과에
오늘날까지도 어찌보면 누구도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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