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漢山城

▣25.南 漢 山 城[25]

동천 2012. 12. 29. 16:48

▣南 漢 山 城[25]

척화파 오달제는 포승줄에 묶인 채
세자가 탄 수레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정이 깊어 금슬도 좋았었지요 (琴瑟恩情重)
만난 지 두 해도 못되었는데 (相逢未二朞)
이제사 멀리 이별하게 되니 (今成萬里別)
백년해로 하잔 약속 헛되이 등졌구려 (虛負百年期)

길은 멀어 글 띄우기 쉽지가 않고 (地闊書難寄)
산이 높아 꿈길 역시 더디겠지요 (山長夢亦遲)
이 내 목숨은 점 칠 수가 없으니 (吾生未可卜)
부디 당신 뱃속 아이를 보호해 주오 (須護腹中兒)

병자호란 당시 극렬한 척화파로 公論을 주도했던
척화론자 "윤집"오달제"는 삼전도의 치욕 후 적진에 송치되어 적장 용골대의 혹독한 심문에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그 후 청나라 땅에 호송되어 온갖 협박과 회유에
시달렸지만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기실 이 시는 오달제가 청에 포로로 끌려가는 도중에
지은 것이나,이 시가 그의 아내에게 전해진 것은
그의 사후였다.

제 3자의 손에 건네졌던 이 글은 오달제가
심양성 서문 밖에서 참수된 후,
淸人들이 유품으로 건네준 요패(腰佩)와 함께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서릿발 같은 의기로 죽음을 각오한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혼자 남겨질 아내와
태어날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고뇌하는 그의 심경이
시의 전반에 잘 표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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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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