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 19.[閔承天]의 백현전투

동천 2020. 4. 19. 07:22

 

 

 

 

 

 

 

義兵抗爭史

■ 19. [閔承天]의 백현 전투

[閔承天]은 의병 300여 명을 이끌고 이천으로 내려와 火砲軍都領將 [方春植]과 협력하여
남한산성의 別牌陣軍官 金順三과 함께 모집한 義砲軍 700여 명을 규합,
총 1,000여 명으로 利川을 거점으로 작전계획을 세웠다.

1896년 1월 17일,
일본군 수비대 180여 명이 이천 의병을 진압하려 한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倡義隊將 [閔承天]은 신속하게

軍指揮 [金河洛].
先鋒將[[金泰元].
佐軍將 [金貴性].
右軍將 [申龍熙].
中軍將 [具然英].
後軍將 [朴準英].
遊擊將 [金敬誠].
突擊將 [沈鍾萬]으로 편성,

1,000여 명의 병력을 3 분하여
☞1개 부대는 백현 아래 골짜기에,
☞1개 부대는 백현 상봉에 매복시키고,
☞또 다른 한 부대는 백현 아래 산에 매복시키고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1월 18일, 왜군이 백현 부근에 도착하자,
입구에 배치되었던 의병이 약 2 시간 사격전을 벌이다가
곧 주력 부대의 매복 지점으로 유인, 백현 골짜기의 포위망 속에서 들어오자
추격하던 왜군은 의병들의 작전에 말려 들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
고전하다가 시체 수십 구를 유기한 채 패주하였고
義兵은 광주 장터를 지나 여주 獐項까지 추격, 궤멸시켜
대승리를 거두고 무기. 군량 등 많은 물품을 노획하여 이천으로 돌아왔다.

參考文軒: 壬辰倭亂史.義兵運動史. 2作戰司精神敎育敎材 等

東 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