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4.騶 己

동천 2009. 4. 9. 15:26


騶 己

齊나라 威王은 戰國時代의 亂歲에 36年間을 임금자리에 있는 동안
처음 9年間을 除外하곤 단 한 차례도 다른 나라의 侵攻을 허용하지 않은 名君이었다.

그러나 그는
帝位에 오른 첫해 부터 臣下들의 機待를 져버리고
술과 女色과 사냥으로 歲月을 보내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臣下들이 忠言을 諫하게 되면
귀찮게 군다면서 그 자리에서 處斷하여
감히 누가 임금께 말 하는 者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를 9年째 되던 해에
"騶己"라는 한 文士가 알현을 請했다.

威王 : 그대는 무엇때문에 나를 보러 왔는가?
추기 : 듣자하니 王께서는 音樂을 좋아하신다기에 特別히 거문고를 들려 드리려 온 것입니다.

잠시 後 시종이 거문고를 가져와 "騶己"에게 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騶己"는 거문고 줄만 만지작거릴 뿐 탄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威王 : 그대는 어찌하여 거문고를 탄주하지 않는 것인가?
나를 위해 거문고를 탈 수 없다는 뜻인가?

騶己 : 臣은 거문고의 理致를 알 뿐,탄주 솜씨는 王께 드릴만한 것이 못됩니다.

齊威王은 은근히 화가 나서 말했다.
威王 : 그렇다면 거문고의 理致를 말해 보라.

이에 "騶己"가 옷깃을 바로 하고
거문고의 理致에 대하여 말하기 始作 했다.

원래 거문고의 琴은 禁입니다.
즉,음(淫)과 사(邪)를 억제하고 모든 것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지요.

옛날 三皇 中 하나인 복희(伏犧)씨가 처음 거문고를 만들었을 때
그 길이는 3척 6촌 6푼이었읍니다.
그것은 1年이 366日로 이루어진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그 넓이는 6寸인 데.
이는 東,西.南,北,上,下를 합친 6合을 상징하기 위함입니다.

거문고의 앞은 넓고, 뒤는 좁습니다.
그것은 尊貴하고 卑踐한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위를 동글게하고 아래를 모나게 한 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기 위함이며.
줄을 5個로 한 것은 天地가 五行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또 시위를 大弦과 小弦으로 나눈 것은 그 소리를 淸濁으로 구별하기 위함인데,
大弦이 내는 탁음은 넓고 온화하여 君王의 道를 상징하며,
小弦이 내는 淸音은 淸廉하고 맑으니 臣下의 道理입니다.

이리하여 宮,商,角,徵,羽의 다섯 음계가 나오니,
이는 明君과 明臣이 서로 만나 나라를 잘 다스림을 뜻하는 것입니다.


"騶己"의 말을 듣고 있던 齊威王은 感歎하며
威王 : 그토록 거문고의 理致를 잘 아는 그대에게
寡人을 위하여 한곡조 들려 주기를 請하오.라고 하자

騶己 : 臣은 탄주하지 않겠습니다.

威王 : 어째서 그러시오?
騶己 : 臣이 거문고를 만지면서도 탄주하지 않는 것은
王께서 나라를 맡고 계시면서 國政을 돌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臣이 탄주하지 않으면 王을 기쁘게 할 수 없듯이
王께서도 나라를 맡고 계시면서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白性을 기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제야 齊威王은 "騶己"가 자신에게 諫하러 온 사람임을 알았다.

威王 : 先生은 거문고의 理致로써 나라 일을 비유하시니
내 어찌 先生의 말을 듣지 않으리오?
어떻게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騶己 : 王께서는 우선 술을 줄이시고, 女色을 멀리 하십시오.
그런 後에 重臣과 姦臣을 區別하여 백성들을 指導하시면
能히 覇王의 大業을 이루실 것입니다.


齊威王은 宰相감 물색을 위해 9年歲月을 지켜보았던가보다.
더디어 宰相감을 찿았다는 듯, 齊威王은 朝廷으로 나가
신료들에게 선포했다.

<순우곤>을 客卿에 올려 국정고문으로 삼고,
<騶己>를 宰相에 任命하노라.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 列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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