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開戰 2日째의 서울
6,26日, 날이 새기 전부터 서울에는 포성이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市民들은 동요하지 않은 채, 계속 北上하고 있는 완전무장을 한 部隊들을 환송하고 있었다.
![](https://t1.daumcdn.net/cafefile/pds19/21_t_i_z8Eo_Cumn_000_00_00000466) 軍 보도기관은 다음과 같은 戰果를 發表했는데, 그것은 모두 시원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옹진의 第 17聯隊는 해주市를 점령했다." 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이때 第 17聯隊는 仁川으로 철수하여 上陸中에 있었다.
"國軍의 一部는 38度線에서 20 km 까지 北進했다. 고 발표했지만 이러한 뉴스가 보도 되고 있는 사이에 의정부 方面에서는 피난민 대열이 서울로 밀려들고 있었으며 敵이 의정부에 進入한 것 같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포성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대부분의 市民들은 "설마"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北傀機가 용산의 兵營과 여의도 및 김포 飛行場을 기총소사하고, 이어 中央廳에 사격을 가하고는 항복을 권고하는 전단과 "國防軍이 北侵했기 때문에 보복했다."는 허위전단을 뿌렸다.
![](https://t1.daumcdn.net/cafefile/pds27/7_t_i_z8Eo_Cumn_000_00_00000447) 이때 韓國 空軍의 연습기가 무장도 하지 않은 채로 北傀 戰鬪機를 向해 공격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비참했다.
이러한 空中의 狀況은 그대로 地上의 狀況이기도 했다.
軍의 發表는 항상 希望的인 것 이였으므로 이때까지도 피난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포성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더 가까이에서 들려 왔고, 마침내 잠 못 이루는 밤이 오고야 말았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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