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서울 最終 防禦線
6月27日 저녁 무렵. 창동線에서 敗退한 各 部隊는 주로 미아리 고개--청량리 方面에 분산하여 철수했는데,
8 km 에 이르는 미아리線은 이들 將兵으로 재편성한 혼성부대와, 이날 서울에 막 도착한 光州의 第5 師團 예하 2個 大隊 및 第 8 聯隊의 1個 大隊를 1線 배치하고, <미아리고개---봉화산>
지금까지의 쓰라린 경험에서 유재흥 准將은 예비로 第16 聯隊 1個 大隊를 돈암 초등학교에 집결시켰으며.
그기 더하여 總長의 命에 따라 陸本의 병참,병기 경리부대에서 권총하나 휴대하지않은 100 여명이 도착하여 이들을 진지의 간격에 배치하였다.
지원화력은 第 5 師團의 포병 4 門과 남아 있던 포 2門을 합쳐 6 門이었고, 그 外, 57mm 8 정, 81mm 박격포 10 門 뿐이었다.
이렇게하여 서울 사수를 위한 最終 防禦線이 構成된 셈인데, 그 兵力은 3,000 名 미만이었다.
總 指揮는 光州에서 막 도착한 이응준 將軍이 미아리를 포함한 西側 地域을 담당하고,
미아리로 부터 東側 봉화산 一帶까지를, 후퇴해서 막 도착한 7 師團長 유재흥 將軍이 맡기로 合意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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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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