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洛東江 突出部死鬪 스미스 特殊任務部隊의 死鬪
1950年 8月 6日 이른 새벽 美 24師團이 방어하는 경남 창녕군 양산면 일대에 北傀軍 수개 大隊가 낙동강 도하에 성공하자 美軍은 死力을 다해 낙동강을 건너온 北傀軍을 섬멸하려했다.
전투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던 미 제 24사단은 예비인 9연대를 추가 투입하고, 8월 17일 해병여단까지 추가 투입하는 등 초강수를 둔 끝에 8월 19일 마침내 돌출부에서 강을 건너온 북한군을 섬멸하는데 성공하지만
8月 31日 밤~9月4日 밤까지 북괴군의 주요 도하지점인 "영산"정면의 낙동강 돌출부인 "백진 나룻터"를 감제하는 표고 150m의 "大谷高地"에서 있었던 낙동강선 방어전투는 反擊의 여건을 조성하여 기사회생하느냐를 두고 하루하루가 말그대로 悽絶한 死鬪였다.
北傀軍의 기습공격을 받고 분산된 人員은 장교 5名과 사병60~70名으로서 "大谷高地"에 모여든 이들중 제일 선임자인 스미스 중위가 지휘하게 된다.
*9月1日 *이날 아침, 스미스 중위가 사방을 둘러보니 주위에는 북괴군들이 득실대고 있어 무전으로 상황을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이날 오후14;00 時頃, 主 도하지점을 감제하고 있는 "大谷高地"에 美軍이 있다는 것은, 第2공격집단의 주공을 맡고 있는 北傀 第9사단장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지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北傀軍은 미쳐 철수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美軍을 해치우는 것은 간단하다고 생각한 것인지,공격준비사격도 지원화력도 없이 다만 접근해 오는 그런 상태였다.
* 이날 밤, 北傀軍은 100~150名 규모로 세 번이나 야간 공격을 가해 왔지만, "스미스" 부대는 이를 격퇴시켰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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