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 人間戰略

■ 76.李密의 陳情表

동천 2011. 1. 30. 12:23

三國志 人間戰略


■ 76.李密의 陳情表

李密(224~287),

그는 劉備가 세운
蜀漢에서 尙書郞을 지냈고
蜀漢이 亡한 後 晉 武帝가
李密을 太子洗馬로 쓰려했으나
李密은 祖母 奉養을 理由로
陳情表를 올려 사퇴했다.
武帝는 그의 孝行에 탄복하여 노비 두 사람을 하사하고
郡縣의 관리에 명령하여 李密의 祖母에게
衣食을 돕도록 하였으며
祖母가 죽은 後에
李密은 漢中의
태수가 된
人物이다.

▶陳情表
臣 李密은 아룁니다.
저는 不幸하게도 일찍이 딱하고 흉한 일을 당하여
생후 6個月 된 갓난 아이 때 아버님과 死別하였고,
나이 네 살 때 외삼촌이 어머니의 뜻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祖母 劉氏께서 제가 고아가 되고 몸이 弱한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몸소 어루만지며 키워주셨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病이 많아서 아홉 살이 되어도 걷지
못하였고,외롭고 쓸쓸하게 살면서 成人이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일찍이 백부나 숙부도 없으며 끝내 형제도 없습니다.
家門이 쇠퇴하고 박복해서 늦게 서야 자식을 두었으니,
밖으로는 기년복(朞年服)이나 大功·小功服을 입을만한 가까운 친척도
없고, 안으로는 문 앞에서 손님을 응대할 어린 侍童하나 없습니다.

홀로 외롭게 살아가면서 내 몸과 그림자가 서로 위로할 따름인데,
祖母 劉氏도 일찍이 병에 걸려 늘 자리에 누워 계시니,
저는 탕약을 달여 올리며 한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朝廷을 받들게 되면서 맑은 敎化를 온 몸에 입고 있어서,
전에는 太守 규(逵)가 저의 효렴(孝廉)함을 관찰하여 천거하였고,
후에는 자사(刺史) 榮이 저를 秀才로 천거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祖母의 공양을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는데, 마침 조서(詔書)를 특별히 내리시어 저를 郎中으로 任命하였고, 얼마 안 있어서는 나라의 은혜를 입어 저에게 洗馬의 벼슬이 내리시니,
외람되게도 미천한 몸으로 東宮을 모시게 되어,
제가 목을 바친다 해도 그 은혜를 다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에 사정을 모두 表를 올리어 아뢰고,
사양하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조서(詔書)가 간절하고 준엄하여
저의 책임을 회피하고 태만함을 책망하고
郡과 縣의 수령들이 다그쳐서 제가 길을 떠나도록 재촉하며
州의 관리들도 문 앞에 와서는 성화같이 서두르고 있습니다.

제가 조서(詔書)를 받들어 빨리 달려간다면
조모 유씨의 병환이 날로 위독해질 것이고
구차하게 사사로운 정을 따르고자 하소연해도 허락해 주지 않으시니
제의 進退가 참으로 낭패(狼狽)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지금의 朝廷은 孝道로서 天下를 다스려서
모든 老人들도 오히려 동정을 받아 養育되고 있습니다.

하물며 저는 외롭고 고달픔이 남보다 특별히 더욱 심합니다.
또한 저는 젊었을 때 僞朝인 蜀을 섬겨 郎署職을 지냈사오니
본래 영달하기를 도모 하였고 명예나 절개를 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亡國의 賤한 포로로서
지극히 미천하고 지극히 비루한데도 과분하게 발탁되어
寵愛하여 내리신 命令은 恩惠가 두터우니
어찌 감히 주저하며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단지 祖母 유씨의 病이 마치 해가 서산에 지려는 것처럼
숨이 끊어지려고 하니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우니
아침에도 저녁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祖母가 없었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祖母께서는 제가 없으면 餘生을 마칠 수 없을 터이니
祖母와 孫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돌보아 주기에
이 때문에 구구하게 그만두고 멀리 떠나갈 수 없습니다.
臣 密은 今年에 나이 44歲이고 祖母 유씨는 今年에
연세가 96歲이오니 이는 제가 폐하께 忠誠을 다 할 날은 길고
유씨께 恩惠를 보답할 날은 짧습니다.

까마귀가 어미 새의 恩惠를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祖母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만이라도 奉養하기를 願합니다.

저의 괴로움은 蜀의 人士들만이 아니라
梁州와 益州 두 州의 장관들도 훤히 아는 것이며
천지신명께서 실로 모두 보고 있는 것입니다.

願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저의 어리석은 精誠을
가엾게 여기시어 저의 작은 뜻을 허락해 주시어서
祖母 유씨가 제가 僥倖으로 餘生을 끝까지 보존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살아서는 당연이 목숨을 바쳐 忠誠하고
죽어서는 마땅히 結草報恩 하겠습니다.

저는 忠節을 바칠 臣下로서
두려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삼가 절하며 表를 올려 아룁니다.


- 參考文軒 : 名參謀人間戰略,左手史記 右手三國,三國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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