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 人間戰略 唐代의 文豪로 唐宋八大家 中 第一人者이다. 祭十二郞文은 韓愈의 둘째 兄인 韓介의 아들이었으나 큰 兄인 韓會에게 양자보내, 집안의 종손이 된 韓成老가 죽어 지은 祭文이다. 十二郞이라 함은 한유 집안의 형제와 종형제를 합하여 항렬의 순위가 열 두 번 째 임을 뜻한다. 韓愈는 이 제문에서 약속한대로 조카 成老의 아들 韓湘을 자기 아들 韓昶보다 일년 먼저 과거에 급제시키고 이십년 뒤에 59세로 죽었다. 祭十二郞文 모년 모월 모일에 작은아비 나 유는 너의 상사를 들은 지 이레 만에 슬픔을 머금고 정성을 다해 건중을 시켜 제철 음식으로 제수를 갖추고 너 십이랑(韓老成)의 영에게 고하노라. 슬프다. 내 나이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성장하면서 미처 의지할 바를 살피지 못하게 되었으니 오직 형수에게 의지하였었다. 중년에 맏형이 남방에서 돌아가셨는데 나와 네가 모두 어렸어도 형수를 따라 하양 선영에 장사 지내고 돌아 왔다 그리고 나서 너와 더불어 강남에서 객지생활을 할 때는 외로운 몸끼리 함께 고생했으니 일찍이 하루도 서로 헤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위로 세 분의 형님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셨으니 선대의 혈통을 잇는 자손으로 손자인 네가 있고 아들로는 내가 있을 뿐 이다. 2대에 걸쳐 각기 한 사람뿐이니 형상도 어렵고 그림자도 외로웠다. 형수께서는 언제나 너를 어루만지며 나를 가리켜 “한씨 집안에는 오로지 이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셨는데, 그때 너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기억이 없을 것이다. 나도 비록 기억은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이 당시에는 그처럼 슬픈 것인 줄을 몰랐다. 내 나이 열아홉에 비로소 장안으로 왔으며 그 4년 후에 돌아가서 너를 보았다. 또 4년에 내가 하양으로 가 성묘를 했을 때, 형수의 시신을 따라와 장사 지내던 너를 만났다. 다시 2년 후 내가 변주에서 동승상을 보좌할 때 네가 나를 찾아와 그곳에서 1년을 머물다가 가서 처자식을 데리고 오겠다고 청했었다. 다음 해에 동승상이 돌아가시고, 薨귀인 죽은 후 내가 변주를 떠나게 되니 너는 결국 오지 못했다. 같은 해에 나는 서주에서 융사를 보좌하게 되어 너를 데려 올게 했으나 나는 또 관직을 그만두어 너는 또 올 수 없었다. 내 생각에 네가 동쪽으로 따라 온다고 해도 동쪽 또한 객지라 오래 머물 수 없으니 항구적인 대책을 도모 하기는 서쪽으로 돌아가서 집안을 이루고 너를 데려 오려 한 것이었다. 슬프다. 네가 갑자기 나를 버리고 죽을 줄 누가 알았으랴. 나와 네가 모두 소년이었을 때 비록 잠시 서로 헤어지더라도 결국은 마땅히 서로 더불어 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너를 버려두고 장안에서 객지생활을 하면서 열 말의 봉록을 구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비록 만승천자나 삼공의 지위를 준다 하더라도 나는 하루라도 너를 버리고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맹동야가 왔을 때 내가 너에게 편지 써 보내기를 내 나이 40도 되지 않았는데 눈이 침침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치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백부와 숙부들과 형들이 모두 건강했음에도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생각해 볼 때 나같이 쇠약한 사람이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 내가 갈 수 없고 네가 즐겨 오지 않으니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어 네가 한 없는 슬픔을 안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누가 젊은이가 죽고 늙은이가 살아남으며 건강한 사람이 요절하고 병든 사람이 무사할 것을 알았겠느냐. 슬프도다. 참말인가 꿈인가. 죽었다는 기별이 진실이 아니잖는가. 참말이라면 우리 형님의 성덕으로 그 후사를 일찍 죽게 하겠는가. 너의 순결함과 총명함으로 그 은혜를 입을 수 없었단 말인가. 젊고 굳센 자가 일찍 죽고 나이 많고 쇠약한 자가 살아남아 온전하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꿈인가, 전하는 것이 참말이 아닌가 동야의 글과 경란이의 소식이 왜 내 곁에 있는가. 슬프다. 그 것이 진실이란 말인가 형님의 훌륭한 덕으로도 그 후사를 요절케 했으며 너의 맑고 밝음으로 마땅히 집안을 빛나게 할 사람이 그 은택을 입을 수 없었다. 이른바, 하늘이란 진실로 측량하기기가 어렵고 신이란 참으로 밝히기 어려운 것이다. 이른바 이치란 추측할 수 없는 것이며 목숨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나도 금년부터 희끗희끗하던 머리가 변해 허옇게 되기 시작했고 흔들리던 치아도 더러 떨어져 빠지게 되었다. 체력이 날마다 더욱 쇠약해지고 의지와 원기가 날로 쇠미해지니 너를 따라 죽을 날이 얼마나 되겠느냐. 죽어서 지각이 있다면 그 헤어짐이 얼마나 되겠으며 죽어 지각이 없다고 하면 슬픔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슬픔을 느끼지 않을 것이 무궁할 것이다. 네 아들은 겨우 열 살이고 내 아들이 다섯 살인데 나이가 어리고 튼튼한 사람도 목숨을 보존할 수 없으니 이 어린아이가성인이 되어 독립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아 슬프도다. 슬프도다. 네가 작년에 편지하기를 근래에 각기병에 걸려 가끔씩 심하다 했다 나는 말하기를 이 병은 강남에 사는 사람은 늘 걸리는 병이다 하고 처음에는 그것을 근심거리로 여기지 않았다. 아 슬프도다. 마침내 이것으로 인하여 너는 목숨을 잃었단 말이냐. 아니면 다른 질병이 있었더란 말이냐 네가 보낸 편지는 6월 17일에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맹교의 편지에는 6월 2일에 네가 죽었다고 하였고 경란이의 보고서에는 날짜도 없었다. 아마도 맹교의 하인은 집안 식구들에게 죽은 날짜를 물어 보아야 하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란의 보고서에는 마땅히 날짜를 언급해야 하는 줄을 몰랐을 것이다. 맹교가 나에게 편지를 써 보낼 때 하인에게 물었더니 하인이 함부로 말함으로써 그리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 이제 내가 건중에게 너를 제사 지내게 하고 너의 아들과 너의 유모를 조문하게 하였다. 그들에게 양식이 있으면 상청을 지키며 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데려 올 것이고 상기를 마칠 때까지 지킬 수 없다면 즉시 데리고 오되 나머지 노비들은 모두 너의 상기를 지키게 할 것이다. 나의 힘으로 개장할 수 있다면 끝내는 너를 선영에 장사 지낼 것이다. 그렇게 해야 바라는 바를 다 하게 될 것이다. 아 슬프도다. 네가 병든 것을 나는 그 때를 알지 못하였고 네가 죽은 것도 내가 그 날짜마저 알지 못하는구나. 살아 있을 때도 서로 봉양하며 함께 살지 못했고 죽어서도 너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다하지 못하는구나. 염을 할 때도 그 관에 기대지 못하고 하관을 할 때도 너의 무덤에 가보지 못했구나. 나의 행실이 천지신명께 죄를 얻어 너를 요절하게 만들었고 내가 또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자애롭지 못했구나. 너와 더불어 서로 봉양하며 살면서 서로를 지키다가 죽지도 못했구나. 한 사람은 하늘 끝에 있고 한 사람은 땅 끝에 있으니 살아서 너의 그림자가 나의 몸과 더불어 서로 의지하지 못하고 죽어서도 혼이 나의 꿈과 더불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구나. 내가 진실로 그렇게 했으니 그 또한 무엇을 탓 하리오. 푸르고 푸른 하늘이시여 . 어찌 그 끝이 있겠는가 이제부터 나는 세상살이에는 의욕이 없을 것 같다. 마땅히 몇 이랑의 밭을 이수와 영수 근처에 마련하여 여생을 보내리라. 내 아들과 네 아들을 가르치며그들이 성장하기를 바랄 것이고 내 딸과 네 딸을 길러서 그들이 시집가기를 기다리겠다. 슬프다. 말은 다 했을 지라도 정은 끝이 없구나. 너는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아 슬프다. 흠양할 지어다. - 參考文軒 : 名參謀人間戰略,左手史記 右手三國,三國志 - ![]() |
三國志 人間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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