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漢山城

41.南 漢 山 城 [41]

동천 2013. 9. 22. 21:39

南 漢 山 城 [41]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몽골이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70 여년 지탱하다가 멸망하고 만다.

푸른 초원의 유목민 부족에서 태어난 칭기스칸이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그의 리더십과 친화력도 한몫을 했지만 전투원을 경량화하여 기동을 우위로하여 기습을 달성하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전투원의 경량화를 위하여

첫째,갑옷을 가볍게 하였다.
당시 유럽의 갑옷은 금속의 두께를 두껍게 해 70kg이상이었고,돈키호테의 산초처럼 하인이 말에 올려주어야만 했다.
반면몽골군의 갑옷은 7kg정도로 나무를 압착하여 겉을 만들고 안에는 스프링을 넣어 화살의 충격을 스프링으로 줄여서 막게 하였고 유럽의 그것에 비해 1/10로 주임으로써 말의 밑에 붙었다가 말 위에 서서 타는 묘기까지 부릴 수 있었다.

두번째는 브르츠라고하는 식량이다.
동서고금의 전쟁사에서 병참선이 차단되어 전투에서 이기고도 전쟁에서 지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보급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소 한 마리를 육포로 만들어 1년분의 식량을 소의 방광에 넣고 다녔으니 아예 보급로의 필요성이 없는 것이었다,

셋째로 반달 칼을 들 수 있다.
반달칼은 원래 아랍인들이 쓰던 칼인데,아랍을 정복한 후 아랍의 기술을 받아들여 몽골군이 주요 무기로 사용했다.

유럽 기사들의 긴창은 찌르는 것으로만 살상이 가능한데 비해 반달칼은 어디를 스쳐도 살상이 가능한 것이었다.이러한 기술들을 텅합하여 몽골군은 유럽 군사들과는 전혀 페르다임이 다른 전투를 했다.

전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누어서 전투를 하거나 성을 뺏고 뺏기는 유럽군의 전투방식과 달리 몽골군은 러브전술이라 하여 선두부대가 적을 유인한 후 본대가 순식간에 나타나서 지도부만 공격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러한 전술에 의거 유럽을 순식간에 석권하였지만 불세출의 엉웅 칭기스칸이 죽고 몽골제국은 70년 정도 유지되다가 멸망하고 만다.멸망의 원인도 활로서는 대적할 수 없는 총이라는 신무기의 등장때문이었다.


남한산성은 여기까지입니다.
연재한 내용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요약하면서
고려사를 첨가한 것이임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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