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 3.義兵의 蜂起

동천 2020. 4. 8. 11:28

義兵抗爭史

■ 3. 義兵의 蜂起

邊方의 官軍들이
왜적이 쳐들어
온다는 풍문만 듣고
도망하기 급급하고
首領들은 城을
死地로 생각하고
도주하기 급급하여
백성들은 관군의
敗散에 격분하였다.

무인지경이 된
국토에는 왜적이
財物 掠奪,婦女子
姦淫 등 天人共怒할
만행을 자행하자
鄕民들은 倭賊의
위협으로 부터
가족과 재물을 수호하겠다는 애향심이
勤王精神에 투철했던 향리 儒生과 손을 잡음으로써
自然發生的인 武力抗爭 集團으로서의 義兵集團이 성립되었다.

☞하여, 4월 22일 경상도 玄風 儒生 郭再祐의 봉기를 시초로
☞충청도 옥천의 趙憲
☞경상도의 정인홍,김면,손인갑,김준민
☞전라도의 고경명,유팽로,김천일,김덕령
☞함경도의 정문부
☞義僧 휴정,유정,영규,처영 대사 등이 봉기하였다.

의병들의 대왜항쟁은 1592년~ 1593년에 집중적으로 전개 되었으며
1594년부터 의병활동이 미약해진 것은
☞첫째,戰局이 차츰 호전되어 관군이 재편성 강화 되었다는 점
☞둘째,의병들이 관직을 받거나 관군으로 편입되었고
☞셋째,후기 의병은 질적 저하로 조정에 의해 통제하였으며
☞넷째,연년의 흉농으로 군량 확보가 어려워 자연 해산되었다.

壬辰倭亂時 의병들의 대소 전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활약상이 컸던 1592~1593년 間의 전투를 소개하며
여러 전투에서 決死의 氣槪로 抗拒한 先烈 義兵들은
오늘날 우리들로 하여금 그 英風에 숙연히 머리 숙이게 한다.

參考文軒: 壬辰倭亂史.義兵運動史.2作戰司精神敎育敎材 等

東 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