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최초로 의병이 일본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로서 이 승리로 일본군의 전라도 진격을 막았고 郭再祐 義兵을 중심으로 의병들이 糾合되었다.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에게 크게 밀린 조선 조정은 3대 곡창 지대 중 경상도와 충청도를 잃고 남은 전라도는 쌀이 가장 많이 나는 지역이기에 彼我 확보해야할 꼭 필요한 지역이었다. 이에 일본군은 전라도 진격 작전을 개시하여 일본군 6부대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전라도 진격 작전을 지휘하고 고바야카와의 휘하 부하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는 2000명을 이끌고 전라도로 통하는 길목인 경상도 의령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한편, 선비 출신 紅衣 郭再祐 將軍은 의령 남강 북안의 정암진에서 의병들을 매복시키고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력 5월 26일,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의 2,000명 병력은 정암진 대안에 도착하여 정찰대를 보내 도하 지점을 설정하고, 지역 주민을 동원하여 수심이 얕고 지면이 단단한 도섭지점에 나무 푯말을 꽂아 표시를 해두고 뗏목을 만들어 도하 준비를 한후 본대로 돌아갔다. 곽재우는 밤 사이에 군사들을 동원하여 도하지점 표식 나무 푯말을 늪지대로 바꿔꽂아두고 요소요소와 숲에 군사들을 매복시켜두었다. 날이 밝자 안코쿠지의 일본군 선봉대가 도하를 시작했으나 늪지대로 잘못 들어가 의 의병군에게 선멸되었고 안코쿠지(에케이 ?)의 주력군이 남강을 도하했으나 대기하던 곽재우 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군 6부대는 전라도 진격을 포기하여 임진왜란 참전 일본군 부대 중 유일하게 전라도에 진출하지 못한 부대가 되었다.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승리를 거둔 [郭再祐] 의병 부대는 慶尙右道 招諭使 [金誠一]의 도움으로 의령 과 삼가 두 縣을 편입, 병력 1000명으로 불어났고 전 목사 [오운]과 [박사제]의 3,000명의 병력까지 합세하여 총 4,000명이나 되었다. 이후 [郭再祐]가 이끄는 의병들은 신출귀몰한 작전을 전개하여 의령을 중심으로 삼가,합천,창녕,현풍방면의 적의 접근을 단호히 물리쳐 경상 우도의 기반을 마련하여 1년 이상이나 시간적 여유를 얻음으로써 부산.김해,창원 방면의 적을 견제한 공이 지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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