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高敬命]은
-중앙은 [高敬命] 자신이 맡아 錦山城 을 향해 공격하고, -특공대로 하여금 城門을 파괴하도록 하여 성안을 압박해 갔다. 그러나 적의 저항이 이외로 완강하여 별 진전 없이 날이 저물자 방어사 [郭嶸]휘하 관군은 더이상 공격하지 않고 본진으로 철수해 버렸다. ☞7월 10일 여명을 기하여, 왜군은 아군의 진중 상황을 탐색하고자 성중에 납치하고 있던 우리 남녀를 설득하여 거짓 으로 성을 탈출, 간첩활동을 하여 의병보다 관군이 전투력과 전의에 있어 취약하다는 진중상황을 적에게 알려주었다. 이튿날, 왜군은 간첩이 알려준 정보에 따라 전병력을 투입 관군을 목표로 포위 공격하니 영암군수 [金成憲]이 이끄는 관군이 도주하자 의병들이 [관군이 무너졌다]소리치니 義兵陣은 동요하기 시작하였고, 관군을 석권한 왜적들은 총공세를 가해오자 [高敬命]은 그의 차남 [인후]와 같이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고 만다. 그러나 그의 장남 [종후]는 혈로를 뚫고 탈출에 성공하여 생존한 의병들을 다시 수습하여 復讐軍을 이라 칭하고 대왜항쟁에 힘쓰다가 제2차 晋州城戰鬪에 참가하여 조국을 위해 산화하였다. 이 錦山城戰鬪는 관군과 의병의 聯合作戰 실패로 패배하였지만 왜군의 전주 지역 진출을 저지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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