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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開戰 3日째의 서울

■27.開戰 3日째의 서울 6月27日 새벽, 韓國軍 第 1師團은 봉일천線에서, 의정부지구 전투사령관 유재흥 准將은 창동線에서 必死的으로 戰線을 정비중에 있었다. 이무렵 李 大統領은 國務會議와 非常國會의 소집장에 서명한 후 02;00 時 傾, 극비리에 용산역을 떠나, 프란체스카 婦人과 함께 大田으로 가는 기차안에 있었고, 6·25 가 발발한 이튿날부터 남한에 있던 미국인 2000여 명이 비행기와 배편을 이용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음날인 28일 02시15분 한강교가 폭파됐다. 조선인민군의 한강 도하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파죽지세. 북한군은 밀고 내려왔고, 남한은 속수무책이었다. 6月 26日 24;00~27日 02;00時, 蔡 秉德 參謀總長은 各軍 參謀總長이 참석한 國防 首腦 연석회의에서 눈물을 ..

韓國戰爭秘史 2009.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