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31.杞梁과 孟姜

동천 2009. 5. 10. 11:06

杞梁과 孟姜

B.C. 551年은
晉國이 齊를 대파하고 中原의 孟主 자리를 다진지 4年이 경과된 해이고, 魯나라에서는 東方의 大聖이라 불리는 孔子가 태어난 해이다.

그로부터 몇년 후
복수의 칼을 갈던 齊莊公은
國境 北쪽의 晉나라를 攻擊하였다가
數千名의 軍士를 잃고 간신히 포위망을 탈출하여
黃河를 건너 回軍하게 된다.


齊莊公은
晉나라 정벌의 失敗에 대한 화풀이로
回軍途中에 首都 "임치"에서
직선거리 400리 남쪽 이웃의 "거"나라를 공격하게 된다.

齊나라 장수 "華周""杞梁""습후중"은 한 兵車에 탑승하여
"거"나라땅 蒲候氏라는 邑을 지날때
300名의 군사를 거느리고 순찰 나온
"거"나라 君主 여비공(黎比公)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黎比公"은 寶物을 줄 터이니 돌아가서
자기나라를 공격하지 말도록
齊莊公에게 중재 해줄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齊나라 將帥 "華周"는

財貨를 탐내어 君主의 命을 저버리는 것은 忠이 아니요,
君主의 命을 받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信이 아니요
또 敵陣에 들어가 敵을 베는 것이야말로 將帥된 직분 이니
齊나라와 "거"나라와의 關係는 우리가 알바 아니다.라고 하였다.


"黎比公"은 싸움을 피하여 城內로 도망가자
한 兵車에 있던 세 將帥는 "黎比公"을 놓칠세라 이를 추격하다가
마침내 華周와 杞梁 두 將帥는 敵의 화살을 맞고 죽게된다.


하여
"杞梁"의 아내 "孟姜"이 남편의 시체를 영접하러 나왔다.

그 때 마침 齊莊公도 수레를 멈추게 한 後,
친히 孟姜에게 닥아가 弔問을 하겠다고 하자

孟姜이 齊莊公에게 묻기를
제 남편 杞梁께서 罪가 있습니까?
齊莊公 : 罪가 있을리 있는가?
오히려 功이 있도다.


孟姜 : 그렇다면 主公께서는 그냥 돌아 가십시오!
齊莊公 : 어째서 그런가?

孟姜 : 만일 제 남편에게 罪가 있다면 여기서 主公의 弔問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나, 罪가 없다면 屍身을 城 안의 집으로 들여 장사를 치르겠습니다.
故人의 집이 비록 지체가 낮다고 하지만 엄연히 城안의 집이 있는데
어찌 郊外에서 弔問을 받을 수 있게읍니까?
罪人이 아닌 바에야 郊外에서 弔問을 받는 法은 없읍니다.


齊莊公 : 나의 잘못이다.
杞梁의 屍身과 위패를 집으로 옮기도록 하라.
내 다시 問喪하리라!


그 날로 남편의 屍身을 집으로 들인 孟姜은 3일 밤.낮을 울었고,
마침내 두 눈에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孟姜의 痛哭이 얼마나 사무쳤던지
울기 시작한지 사흘째 되던 날 "임치성"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한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 列國志-

東 川 다음에 계속됩니다

'史 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33.곽외의 買死馬骨  (0) 2009.05.14
32.李 克  (0) 2009.05.12
30.漁夫之利.  (0) 2009.05.08
29. ■ 蘇秦 과 張儀 (1)  (0) 2009.05.07
28.合縱과 連橫(2)  (0) 2009.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