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30.漁夫之利.

동천 2009. 5. 8. 08:29



漁夫之利

이야기의 주인공은 合縱策으로 有名한 蘇秦의 동생 "소대"이다.
蘇秦의 同生 "소대"는 燕나라 사람으로 그도 兄처럼
혀 끝으로 策略을 마음대로 한 사람이었다.

戰國時代의 燕나라는
中國大陸의 北東쪽에 位置하여 趙나라, 齊나라와 接境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이 두 나라로 부터 侵攻을 당할 危險을 안고 있었다.

B.C. 320年 頃,
燕나라가 兇年이 들어 國家 財政이 바닥 나고
국민들의 살림이 궁핍한데도 불구하고
인접한 齊나라에 軍事援助를 보내게 된다.

趙나라는 이를 좋은 機會로 삼아 燕나라를 侵攻 할려고 하고 있었다.

燕나라 소왕으로서는
當面한 危機를 타개하기 위하여 "소대" 를 趙나라에 사절로 보내
攻擊하지 않도록 說得하게 하였다.


사절단으로 간 "소대"는
趙나라 혜문왕을 배알하여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저는 이곳에 올 때 역수 가를 지나 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강가를 바라 보았더니 조개가 껍질을 열고 있더군요.
그 것을 본 초새가 날라 와서 그 조개를 쪼으려고 했어요.
그러자 조개가 얼른 껍질을 닫게되니 초새는 부리가 조개에 물려버렸읍니다.

그러자 초새는
"이 조개놈아! 이대로 며칠간 비가 오지 않으면 죽고 말 걸!" 하자
조개가
"뭐야. 내가 이대로 네의 부리를 물고 있으면 넌 곧 죽고 말 걸!"
"이렇게 서로 버티면서 讓輔를 하지 않았읍니다.
그러고 있는 사이 漁夫가 와서 둘 다 잡아 가버렸읍니다."

이것을 보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燕나라를 치려고 하고 계신데,
燕나라가 조개라면,趙나라는 초새입니다.
여기서 두 나라가 다투다가는
결국 두 나라 모두가 지치게 될 것이며,
그 틈에 强大國인 秦나라가 고기잡는 어부가 되어
단물만 빨아 먹게됩니다."


이 말을 들은 賢明한 趙혜문왕은
燕나라를 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여 곧 中止해 버렸고,
"漁夫之利"라는 고사성어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 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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