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蘇秦 과 張儀 (1)
낙양사람 蘇秦은 六國을 아우러는 宰相職을 겸임하여 合縱의 孟主로서 推戴되었을 때의 일이다.
蘇秦이 宰相이 되어 趙나라에 있을 때 어느날 張儀의 訪問을 받았다. 張儀는 同門이고 극친한 사이인지라 크게 待接할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蘇秦은 6일만에야 겨우 면회를 허락, 자기는 높은 단상에 앉고 張儀는 당아래 앉혀놓고 식사도 下人들이 먹는 아주 형편없는 것을 주었다. 張儀는 蘇秦이 갑자기 감투를 쓰더니 변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화를 내고는 그대로 秦나라로 가버렸다.
그런데 그가 돌아오는 길에 宿食이나 거마비, 그리고 옷까지 일체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다. 張儀는 그가 벼슬을 하게 되면 德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所行이거니 했다.
끝까지 따라다니며 돌봐주던 그 사나이는 張儀가 벼슬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人事次 訪問하여 진상을 알려주었다. 이건 모두가 蘇秦 대감의 배려에 의한 것이며 대감을 발분시키기 위해 일부러 화를 내게 하여 돌려보내신 것입니다. 秦나라는 6個國 合縱의 방해자요. 秦나라가 방해하지 않도록 대감더러 힘써 달라는 전갈이었습니다.
張儀는 蘇秦의 깊은 뜻과 情을 미처 몰랐음을 부끄러이 여기면서 蘇秦이 살아 있는 한 그의 뜻을 따르겠노라는 말을 전하라면서 그 사나이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훗날 張儀는 連橫策을 내어 놓으면서 蘇秦이 推進하던 合縱策을 와해시켜버리고 만다.
蘇秦이 合縱策으로 六國의 宰相이 되기 전의 일이다.
그는 6국을 찾아다니며 유세를 하였지만 알아주는 諸侯가 없어 失敗를 거듭하여 하는 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었는데 남편을 보고도 베틀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함께 있던 兄嫂도 밥을 주려 하지 않았다. 주둥이만 살아서 허풍만 떨고 돌아다니더니 이젠 밥도 못먹고 돌아왔는가 하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가 六國의 宰相이되어 楚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故鄕인 낙양을 지나는데 그 행렬이 왕후 못지않은 호화로운 행차였다.
이에 압도당한 兄弟들이나 아내와 兄嫂들은 蘇秦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였고 食事를 나를 때도 얼굴을 숙인 채로였다.
예전에 제가 유세에 실패하고 초라하게 돌아왔을 때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리 법석이니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그러자 兄嫂가 그야 서방님의 지위가 높아지고 富者가 되셨기 때문이지요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古今小說에
貧賤親戚離:가난하고 천해지면 친척마져 떠나가고, 富貴他人合:부유하고 귀해지면 타인들도 찾아온다 했던가.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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