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28.合縱과 連橫(2)

동천 2009. 5. 7. 16:36

合縱과 連橫(2)

하여,

秦王은 蘇秦보다 優秀하다는 張儀를천거받아 높이 登用하고 對策을 熟議하여 構想해낸 戰略이 連橫策이다.

連橫이란 超强大國 秦나라가 各各의 나라와 個別 同盟을 맺어 合縱同盟을 無力化하는 橫的槪念의 政策이다.

張儀는
이 政策을 推進하기 위하여
最强國인 秦을 배척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제시하고, 親秦 政策만이 平和와 生存을 위한 唯一한 對案이라는 것을 各國에 强調하였다.

以後 6年 동안
蘇秦과 張儀는 各國을 相對로 유창한 자신의 政策을 정당화하려는 치열한 政策對決을 벌리게 되는데 상대방을 모함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비열한 方法을 다 동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楚나라가 秦나라를 攻擊하다가 무참히 敗退하는 일이 發生하였는데, 秦나라는 믿을 수 없다는 意見과 역시 秦나라와 對敵해서는 안된다는 意見이 對立하여 이 또한 두 政策의 對決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蘇秦이 秦의 일개 侍衛에게 허망하게 被殺 되고,
秦惠文王도 死亡하면서 合縱과 連橫策도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그 뒤 齊王이 楚王에게
聯合하여 秦을 치자고 提案하였으나 한번 秦에게 大敗한 楚王은 구차한 이유를 들어 거절하는 사실이 있었고,

모처럼 六國이 聯合하여 秦을 치기로 하였다가 秦이 먼저 각개격파하여 六國의 자중지란을 이르키게함으로서 戰爭은 유야무야되고 各者 回軍해버리는 헤프닝도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서 蘇秦의 合縱은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말았지만, 合縱이 없는 張儀의 連橫도 無意味해져 점차 消滅되고 만다.


鬼谷先生의 修弟子들이 世上에 나와 孫殯과 龐涓처럼 軍事戰略으로 對決하고, 蘇秦과 張儀같이 외교전략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것도 그 시대의 특징이면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의와 소진이 죽은 후에도 이 전략은 전국시대 생존전략으로 널리 활용 되었는데 이 두戰略을 일컬어 從橫策이라한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列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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