基督敎 수난 동기[4] ★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같은 존재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강화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이들을 겨냥해서 탄압하기에는 더 없이 적당한 상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무렵, 수도 로마는 인구 100 만에 행정구역을은 14개구로 되어있었는데, 전통적으로 유대인이 많이 모여사는 제14구를 떠나 테베레강 동쪽 연안 도심에서 떨어져 땅값이 싼 제12구 와 제13구로 옮겨 집단 거주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구역에는 예수님의 보살핌이 있었던지 화재가 번지지 않음으로써 표적이 되었다. 유대교도가 로마 제국에 대해 일어킨 반란은 AD 70년에 예루살렘 함락으로 진압되었는데, 이때부터 기독교회가 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유대교회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에 정설로 되어 있다. 東 川 |
'Roma인 과 基督敎' 카테고리의 다른 글
基督敎 수난[6] (0) | 2009.04.11 |
---|---|
基督敎 수난 동기[5] (0) | 2009.04.10 |
Roma市 大火災[3] (0) | 2009.04.08 |
2. 네로 황제시의 기독교 수난 (2) (0) | 2009.04.07 |
1. <로마인과 기독교>를 연재하면서(1) (0) | 2009.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