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暮途遠
楚나라 出身 伍子胥, 그는 楚 平王 때 "비무극"이란 奸臣의 무고로 아버지와 형이 살해 되자, 唐-宋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吳나라로 亡命하여 公子 "광"을 도와 帝位에 오르게 하니 그가 곧 吳나라 "합려(闔閭)"이다,
그는 오직 楚平王에 대한 복수의 一念으로 17年이란 긴 세월동안 闔閭를 도와 吳나라를 超强國으로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게 된다.
복수의 화신 伍子胥는 드디어 吳王 闔閭를 부추겨 孫子兵法의 著者, 孫武를 軍士로 삼아 철천지 원수 楚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영성"을 占領함으로써 초소왕(帝位10年)은 수나라로 도망하게 된다. 이 때가 B.C. 506年으로 2,512年前 일이다.
楚나라를 占領한 伍子胥는 楚平王의 무덤을 파고, 그의 시체에 가죽채찍으로 300대를 때려 원수를 갚는다.
그 後에도 伍子胥는 吳王을 도와 越나라를 정복함으로써 吳나라가 中原의 새로운 實力者로 자리매김 하는데 能力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나 闔閭가 죽고 그의 둘째 아들 "부차"가 王位에 오른 뒤 부차와의 정책이 서로 맞지 않아 자주 갈등 하다가 自決하게 되는데.... 그가 自決 할 무렵 그의 親舊이자 楚나라 宰相인 "신포서"는 伍子胥의 非道德的인 行動을 叱咤하는 書信을 내었다.
이에 伍子胥는 "신포서"에게 한 유명한 말이 바로 日暮途遠이다. "우선 楚平王의 일에 대해서는 謝罪하는 바이네. 하지만 자네는 나의 마음을 알아 주어야 할 것이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기 때문에 每事 道理에 어긋나는 짓을 할 수 밖에 없다 < 日暮途遠>"라고.
요즈음도 할 일은 많으나 힘들고 지쳐, 편법을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입에 담는 말이다. 日暮途遠 이라....................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國志, 韓非子,十八史略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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