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14.殺身成仁

동천 2009. 4. 18. 14:29

殺身成仁

殺身成仁의 뿌리를 찾을 려면 2,520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때는 B.C. 515年頃,
"伍子胥"는 그의 祖國 楚나라에서
楚平王과 "비무극"이란 간신 때문에
그의 父親인 "오사"와 兄이 억울하게 죽고

자기 역시 현상금 붙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宋나라를 거쳐 吳나라에 亡命하여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伍子胥는
吳나라의 公子 "광"을 도와,
亡命길에서 義兄弟를 맺은 "專諸"라는 호걸로 하여금
吳王 "요"를 죽이고 公子 "광"을 임금에 오르게 하니,
그가 곧 吳越同舟의 古史를 만들어내는 吳王 "闔閭"이다

闔閭는
"요"를 죽이고 帝位에 오르긴 하였으나
"요"의 아들 "경기"가 아버지의 怨恨을 갚기 위하여
別動隊를 構成하여 호시탐탐 복수의 날을 기다린다는
情報를 입수하고 이를 除去하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吳王 闔閭는 宰相 伍子胥를 불러
"專諸"와 같은 豪傑을 推遷해주기를 請하자,
伍子胥는 "요이"라는 사람을 推遷하였다.

"요이"는 5척 단구에 바람이 불면 넘어질 것 같은 허약체질이라
호랑이같이 억센 "경기"를 除去하는데 適合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吳王 "闔閭"는 크게 失望 하였다.

그러자 "요이"는
사람을 죽이는 데는 힘만 必要한 것은 아닙니다. 臣이 "경기"에게로 가서 닭 목 자르듯 그의 목을 베어 오겠읍니다. 라고 장담한다.

그러고는 "요이"가 아뢰기를
"경기"가 決死隊를 造織하고 장차 복수의 칼을 뽑아 吳나라를 칠 생각이라면 잘됐습니다.
王께서는 그를듯한 罪를 만들어 臣의 아내와 子息을 모조리 죽이고
臣의 오른팔을 끊는 刑罰을 내리십시요.
그런 後,
臣을 吳나라 밖으로 추방하면 "경기"는 틀림없이 臣을 믿고 가까이 할 것이고
그렇게되면 어찌 경기를 죽이는 일에 失敗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吳王 "闔閭"는
罪 없는 그대에게 어찌 그런 참혹한 刑罰을 내릴 수 있겠는가? 라고 말 하자

요이가 아뢰기를

妻子를 便安하게 하려고 임금에게 誠을 다하지 않으면 이는 忠이라 할 수 없으며,
내몸을 아끼느라 임금의 근심을 덜어 주지 않으면 이는 義理라 할 수 없습니다.
臣이 忠義로서 後世에 이름을 남길 수만 있다면 妻子가 죽고 제팔이 짤린다 한들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렇게하여 吳王 闔閭는
요이로 하여금 경기를 除去케하여 불안하던 內政을 安靜시키고,
名 宰相 伍子胥에 孫子兵法으로 유명한"
孫武를 登用하여 中原의 새로운 實力者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 列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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