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12.■ 刺客 "豫讓"

동천 2009. 4. 17. 16:03


■ 刺客 "豫讓"


B.C.490年頃,
南方에서 吳와越 두 나라가 吳越同舟의 歷史를 만들어 내고 있을 즈음,
中原의 4强이고 前 覇公國 이었던 晉나라는 王權이 쇠퇴하여
6卿(趙, 魏, 韓, 舜, 范, 知氏) 들이 전권을 掌握하고 있었다.

이들 權勢家들의 權力鬪爭은 수십년간 치열하게 이어지다가
舜, 范, 知氏는 敗退하고,

막강하던 晉나라는
趙나라, 韓나라, 魏나라로 分離 獨立함으로써
春秋時代에서 戰國七雄 時代로 들어서게 된다.


이 權力鬪爭過程에서
당시 晉나라 宰相이었던 知氏의 "지백"은
實質的 權力者였던 趙氏의 "조양자"와 대결하다가
滅門之禍를 당하였다.

勝利한 "조양자"는
죽은 "지백"의 해골을 변기로 사용했다하니 權力鬪爭에 따른 怨恨이
얼마나 심각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여,
"지백"의 부하들은 모두 처형당하게 되었고 ,
그 中 "豫讓"이라는 사람은 살아남아 있었다.

이 "豫讓"은
敗戰한 것도 분하고 억울한데
조양자가 지백의 해골로
便器를 만들었다는 소식에 매우 분개하여
主君의 怨恨을 갚기로 작심한다.

그는 罪囚로 가장하여 조양자 陣營에 잠입한 後,
機會를 틈타 조양자의 화장실에서 擧事하려다가 발각 된다.

조양자는 자신의 앞에 끌려나와 당당하게 자기의 目的을 진술하는 豫讓을 "主君을 위하여 목숨을 건 義人이라"고 치하하고 처벌없이 즉시 석방하였다.

그러나 석방된 豫讓은
복수의 意志를 저버리지 않고 지난번 準備不足으로 失패한 것과 이미 발각된 外貌를 고려하여 더욱 철저히 準備한다.

우선 자신의 容貌를 가장하기 위하여 눈썹을 깎고, 얼굴에는 옻칠을 하여 완전히 거지형상으로 變裝하였으며,
숯을 먹어 목소리까지 變聲한 뒤에 擧事할 時間과 場所를 물색한다.

드디어 조양자가 赤橋라는 다리의 竣工式에 參席한다는 情報를 얻어 즉시 거지로 가장한 後 이 다리 밑으로 잠입하지만,
이번에는 조양자의 名馬가 먼저 豫讓을 發見하고 놀라는 바람에 또다시 체포되어 신분까지 들어나 버린다.

끌려온 豫讓에게 조양자는
나는 나를 해치려는 너를 살려 주었고,
너는 "지백"말고 다른 主人도 모신일이 있는 사람인데,
왜 "지백"만을 위하여 나를 다시 해치려 고집 하느냐 ?” 하고 따져 물었다.


豫讓은
士爲知己者死: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女爲悅己者容: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을 위해 단장한다.” 라고 하면서

내가 主君의 怨恨을 갚지 못해 죽은 後에 主君을 뵐 낯이 없으니 흉내라도 낼 수 있도록 조양자의 겉옷 하나를 벗어달라고 懇請한다.


조양자의 許諾을 받은 豫讓은
눈물로 主君인 지백에게 자신의 失敗를 謝罪한뒤,
그가 벗어준 겉옷에 세번 칼질하고 그 자리에서 자결하였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조양자의 옷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조양자는
심한 충격을 받고 시름시름 앓다가 1年뒤에 病死하고 만다.

司馬遷은
그의 저서 자객열전에서
豫讓을 春秋戰國時代의 수많은 刺客 중에서 最高의 刺客일 뿐 아니라,

남으로부터 어떤 보수나 사주를 받지 않고 오직 主君의 怨恨을 갚기 위하여 스스로 결행한 義人이라고까지 칭송하고 있다.


또한 그가 남긴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이라는 말은 많은 이들이 愛用한 말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男子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女子는 자기를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정조를 바친다.” 라는 말로
변형되어 쓰여지고 있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史 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殺身成仁  (0) 2009.04.18
13.■ 日暮途遠  (0) 2009.04.17
11. ■ 晉文公 과 介子推(2)  (0) 2009.04.15
10.■ 晉文公 과 介子推(1)  (0) 2009.04.14
9.魏文后 와 서문표(2)  (0) 2009.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