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21.■ 董狐直筆(1)

동천 2009. 5. 5. 14:31


■ 董狐直筆(1)


나폴레옹이

“펜은 칼보다 무섭다”라 한 것을 절세의 名言이라고 배웠지만,
지금부터 2,600年前에 中國에서 "董狐直筆"이라는 말과
“필봉이 칼끝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이미 생겨나 있었다.

B.C.600年 頃에 이르러 제후국들의 權力이
君主中心에서 점차 貴族中心制로 移動하는 時期이다.

晉나라에는 B.C.608年 晉靈公이
겨우 7歲의 나이로 龍上에 올랐고,
實質的 權力은 趙氏 一家가
掌握하고 있었다.
實權이 없는 어린 王은
그의 나이 20歲가 되면서
매일같이 酒色에 빠져 지내거나
몹쓸 오락으로 歲月을 보내고 있었다.
나라의 원로이고 宰相인 조순이 여러 번
임금을 책망하자 晉靈公과 側近들이 조순을 除去할 計劃을 세우게 된다.
이러한 情報를 입수한 조순은 일단 國境부근으로 避身하여 事態를 觀望 하고 있었다.

그런데 兵權을 손에 쥐고있던 조순의 從弟인 조천이 구테타를 일으켜
王을 살해하자 避身해있던 조순이 돌아와 엉터리 새 임금을 세우는
政變이 일어났다.

이러한 事態를 수습하고 專權을 장악한 조순은 구테타의 主犯인 從弟 조천을 亂臣賊者로 몰아 處罰하고 자신의 處身을 合理化한 이 事件을 두고
當時 "董狐" 라는 史家는
“9月 乙丑日(27日), 조순이 임금, 이고를 弑害하다.” 라고 記錄하였다.

天下에 두려울 것이 없던 조순은
자신이 수양산에 避身하고 있을 때 이 事件이 發生하였기 때문에
자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事件 發生 卽時 歸京하여 王을 殺害한
조천을 法에따라 處刑 하였으며 새로운 임금을 세워 社稷을 공고히 한
내가 이러한 누명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 라고 항변 하면서

史官 "동호"에게 記錄正訂을 命令하였다.

그러나 史官이라는 일개 末職에 불과한 "동호"는
임금까지 左之右之하는 最高의 實力者 조순 宰相에게

조순은 피난하였다 하나 국경을 넘지 않았고,
宰相職도 반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王이 시해당한 責任을 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조천을 處罰 했다하나 그는 바로
조순의 從弟이고 그의 叛逆도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記錄은 매우 正當함으로 고칠 수 없다. 라는 理由로 조순의 命令을 거부하였다.


이 事件을 계기로 權力에 굽히지 않고 眞實을 記錄하려는 精神과 行動을
董狐直筆이라 부르게 되었고 後世 史官은 물론 모든 記錄者에게
커다란 본보기가 되었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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