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23.商鞅의 改革(1)

동천 2009. 5. 5. 15:40


商鞅의 改革(1)

B.C.359年 戰國時代 中般期에
秦 효공에 의해 발탁되어 그의 特出한 改革政策으로 秦나라를 超强大國으로 만들어 後日 天下統一의 基盤을 갖춘 사람이 商鞅이다.

그는
원래 衛나라 사람임으로 衛鞅 이라고도 하고,
그의 性氏를 따라 公孫鞅이라고도 하지만,
後에 商땅을 食邑으로 하는 主人이 됨으로서
商鞅 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當時에는
民心을 天心이라 하여 民心을 얻는 者만이 天下를 차지할 수 있다는 思想이 支配的이었는데

상앙은 백성의 원한을 사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富强한 나라만이 天下를 經營할 수 있다는 철저한 힘의 論理를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形名學과 法律學을 전공한 法家로서 오늘날 律師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는
秦효공에게 富强한 强大國을 이루기 위하여는
改革과 철저한 法의 執行만이 最優先이라는 것을 설파하였고,
超强國의 野望을 품고 있던 진효공의 꿈과 맞아 宰相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새로운 改革法을 公表하기 前에,
南門市場 한 복판에 3장 길이의 장대를 세워 놓고,
北門으로 옮기는 者에게 巨金 10金의 賞金을 주겠다고 公告文을 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찮은 일에 나라에서 賞金을 준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아 옮기는 사람이 없었다.

상앙은 다음날 賞金을 50金으로 인상하였다.
그랬더니 한 사내가 賞金은 안주더라도 罰은 내리지 않을 것 아니겠느냐면서 장난삼아 이 장대를 옮겼다.

상앙은 卽時 그 사내에게 約束한 賞金을 直接 支給함으로서
나라가 約束하거나 製定한 法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後에
상앙은 그가 準備한 다음과 같은 改革法案을 全國에 公表한다.

1. 什五法이라 하여 부락 住民을 다섯 집 혹은 열 집씩 묶어
協同과 共同責任을 지게 하였다.(北韓의 5號 담당제와 유사)
2. 分家 義務化로 小家族制度를 施行하여 勞動力 增加.
3. 農業을 장려하고, 商工業은 國家가 獨占 ( 오늘날의 專買制度)
4. 功積 없는 貴族의 特權 박탈 等 이었다.


이 法案이 公表되고 施行하는데 全國이 술렁이었으며,
當時로서는 지나치게 革新的이어서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진효공의 두터운 信賴와 상앙의 推進力으로
이 法은 無理를 하면서도 꾸준하게 進行되었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 列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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