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戰爭秘史

■39. 서울 陷落時 表情

동천 2009. 5. 29. 08:55

    ■39.서울 陷落時 表情

    서울 陷落時의 表情 6月 27日 15;00 時 頃,
    맥아더 司令部의 前方 指揮所가 수원에 設置되었고,

    6月28日 08;00 時 頃부터
    美軍이 직접 지원에 나설 것이니
    당황하지 말라는 喜消息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市民들은 점점 더 友往 左往하게 되었다.

    6月28日 02;00 時에
    李 大統領의 遷都에 관한 談話와
    國民의 분발을 요망하는 녹음방송이 있었고,
    砲聲은 점점 더 가깝게 들려오자 거리엔 피난민들로
    가득 채워졌다.

    서울에서 피난 나온 市民은 約 40 萬名으로,
    그 80%가 南北 分斷 後에 北에서 南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었고,

    20%는 高級 公務員.資本家.友翼係 政治家.
    自由 主義者.軍人.警察官 等의 家族들이었다.

    서울에 남은 市民들의 行動은
    참으로 慨嘆스러운 형태 그 것 이었다.

    1,환영형(歡迎型);
    미친사람처럼 赤旗를 흔들며 北傀軍을 따라다니는 사람.


    2,정관형(靜觀型);
    조심스럽게 집에 숨어있거나 도피생활을 하는 사람.


    3,잠행형(潛行型);
    軍人과 警察官이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숨어 지내는 사람 等으로 大別 됐다.


    점령된 서울은
    붉은색 일변도로
    짓밟히기 시작하였는데.

    北傀軍의 戰車는
    서울로 들어오자마자
    서대문 형무소로 전진하여 政治犯을 비롯하여 일체의 죄수들을 석방하고는

    이들을
    人民의 英雄으로 추켜세워 소위 그들이 말하는
    反民族主義者들을
    잡아들이는 데
    앞잡이로 이용했다.

    北傀軍은
    對民關係에서는
    表面에 나서지 않으면서,

    親美 親日派, 資本家,
    公務員 等을 반역자로
    낙인 찍어 수만명을
    체포하였고,
    그들이 주둔하는 곳마다
    항상 主民들을 숙청하는
    총성이 울렸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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