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서울 陷落時 表情
서울 陷落時의 表情 6月 27日 15;00 時 頃, 맥아더 司令部의 前方 指揮所가 수원에 設置되었고,
6月28日 08;00 時 頃부터 美軍이 직접 지원에 나설 것이니 당황하지 말라는 喜消息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市民들은 점점 더 友往 左往하게 되었다.
6月28日 02;00 時에 李 大統領의 遷都에 관한 談話와 國民의 분발을 요망하는 녹음방송이 있었고, 砲聲은 점점 더 가깝게 들려오자 거리엔 피난민들로 가득 채워졌다.
서울에서 피난 나온 市民은 約 40 萬名으로, 그 80%가 南北 分斷 後에 北에서 南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었고,
20%는 高級 公務員.資本家.友翼係 政治家. 自由 主義者.軍人.警察官 等의 家族들이었다.
서울에 남은 市民들의 行動은 참으로 慨嘆스러운 형태 그 것 이었다.
1,환영형(歡迎型); 미친사람처럼 赤旗를 흔들며 北傀軍을 따라다니는 사람.
2,정관형(靜觀型); 조심스럽게 집에 숨어있거나 도피생활을 하는 사람.
3,잠행형(潛行型); 軍人과 警察官이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숨어 지내는 사람 等으로 大別 됐다.
점령된 서울은 붉은색 일변도로 짓밟히기 시작하였는데.
北傀軍의 戰車는 서울로 들어오자마자 서대문 형무소로 전진하여 政治犯을 비롯하여 일체의 죄수들을 석방하고는
![](https://t1.daumcdn.net/cfile/blog/15189E334E3DB2BC24) 이들을 人民의 英雄으로 추켜세워 소위 그들이 말하는 反民族主義者들을 잡아들이는 데 앞잡이로 이용했다.
北傀軍은 對民關係에서는 表面에 나서지 않으면서,
親美 親日派, 資本家, 公務員 等을 반역자로 낙인 찍어 수만명을 체포하였고, 그들이 주둔하는 곳마다 항상 主民들을 숙청하는 총성이 울렸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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