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戰爭秘史

■42.中東部 戰線

동천 2009. 6. 7. 09:24

    ■42.中東部 戰線


    서부전선이 붕괴되고 있는 사이 중동부 전선에서는
    제6,8 두 사단은 유효하게 지연전을 실시 중이었다.

    ☞第 6 師團
    춘천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6사단은 6월 27일에 갑자기
    洪川 정면에 가해진 적의
    압력 때문에 춘천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단장 김종오 대령이 기적적으로
    육군과 통한 전화에서 받은 임무는
    [서부 전선이 붕괴된 이상 전선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6사단은 사단장 판단에 의하여 중앙선 근처에서 지연작전을
    실시해 주기 바란다]였다.

    지연 목표도, 시간의 명시 없이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능력 범위내에서 알아서 최대한 지연하라는 것이었다.

    서부전선이 붕괴되어 서울이 함락될 무렵인 6월 28일 08:00시,
    지연전준비를 끝내고 춘천 남쪽 석사리에서 북괴 제2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던 임부택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는 정오 무렵
    이탈을 시작하면서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후위로서 원창고개 마루턱에 김종수 소령이 지휘하는 제 2대대의
    철수 엄호를 위해 김용배 소령이 지휘하는 제1대대를 砂峴에
    배치하여 지연전을 하도록 했다.

    원창고개는 춘천 분지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해발 600m의 마루턱이다.
    2대대장 김종수 소령은 고개 좌`우로 진지를 포위하는 형으로 배치하고 숨을 죽이고 적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14:00시 무렵,
    북괴 제2사단 의 2개 연대 규모의 주력부대가 종대로
    뱀처럼 꿈틀거리면서 가파른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김종수 소령은 조급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적의 선두가
    마루턱 아래 300m에 접근했을 때 일제 사격을 며령을 내렸다.

    한국 전쟁사는 이 전투를 두고
    [장병은 昭陽江 근처에서 전투다운 전투없었으므로
    왜 후퇴만하고 있는가 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루속에 들어 온 적을 가차없이 때려눕혔다]고 기술하고 있다.

    북괴군은 맹렬한 사격을 계속 받자 손에 흰 천을 흔들어 댔다.
    김종수 소령은 적이 투항 1개 중대의 포로를 맞이하기 위해 진지에서 나와 올라 오라고 명령했다.
    북괴군은 마루턱에 오르자 태도를 돌변하여
    함성을 지르고 다발총을 쏘면서 돌격하므로 육박전이 벌어졌다.
    이에 김종수 소령의 제2 대대는 위기일발의 순간 구조되어
    김용배 소령의 제1대대 저지진지 엄호속에 철수했다.

    새로 부임해 온 북괴 제2사단장 崔賢 소장은 사단 일부로써 加平에서 수원 방면으로 돌진시키고 주력으로써 홍천으로 남하한 후 수원방면으로 급진하여 국군의 주력을 포위할 계획이였으나 춘천지역 전투에서 40%의 손실로 전투력이 상실되었다.

    춘천 전투의 졸렬한 전투 지도 책임을 물어 7월 10일에 북괴 제2군단장에 武亭을 등용하고, 군단장 金光狹은 군단 참모장으로, 군단 작전 주임참모 李學九는 제13사단 참모장으로 각각 좌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東海岸

    6월 27일 ,제8사단이 강릉에서 대관령 서쪽으로 후퇴했기 때문에
    동해안 도로를 방어할 병력이 없어졌다.

    게다가 이날 포항 동부 해상으로 남하중인 북괴의 선단이 관측되었다.

    육군본부는 27일에 제3사단장 유승렬 대령(유재흥 장군의 親父)에게
    *부산의 제23연대
    * 진주의 독립 제1대대
    * 안동에서 게릴라 토벌중이었던 제25연대 제1대대 등을 지휘하여 동해안 지구를 방어하도록 명령했다.

    육군본부에서는 6월 25일 대구의 유승렬 대령이 지휘하는 제3사단을 전력으로 서울로 북상하도록 지령하였는데 유 사단장은 제8사단의 퇴로가 상륙부대에 의하여 차단 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8사단이 태백산 서쪽으로 후퇴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제23연대의 북상을 보류하고 300대의 민간 차량을 징발하여 경상남`북도에 일어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6월 28일,
    유승렬 대령은 부산의 제 23연대장 金宗元 중령에게 蔚珍 방면으로 북상하여 남하중인 적을 격멸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6월 29일.
    제23연대는 포항에 집결하고 제1대대를 적정을 탐지하기 이해 울진 남쪽으로 진출하다가 영덕에 침입한 게릴라가 경찰을 습격하고 만행을 저지른 것 외에 별다른 것은 없었다.

    6월 30일,
    울진을 정찰하다가 북괴 게릴라 부대인 제766부대가 침입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7월 1일 미명을 기해 울진을 공격하여 적을 북방으로 구축하였고,

    7월 3일 미명,
    북괴 제5사단의 주력부대가 전차 6량의 선도하에 정면에서 맹렬한 공격을 가하는 동시에 산간으로 침투시킨 우회 부대가 좌측 배후에서 기습 공격을 받고 23연대 주력은 平海로 그 외는 寧海,厚浦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7월 2일의 전선은
    한강선-충주-제천-울진 남쪽의 선으로 되어 있었고,
    이날 미 육군의 선견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대전에 도착하고
    제 34연대는 부산에 도착 중에 있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