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 俠 "朱 家" 초패왕 항우가 죽고 여러달이 지났는 데도 한왕 유방에게 가장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싸움터에서 자주 그를 욕보이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했던 항우의 맹장 종리매와 계포가 아직 사로잡히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汝陰候(여음후)에 오른 騰公 "하후영"이 유방에게로 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후영:폐하께서는 지금 천금을 내걸고 계포를 뒤쫓게 하고 계십니다. 그를 잡아들여 어찌하시려는 것입니까? 유방:그걸 몰라서 묻는가? 지난날 계포는 항우의 한 팔이 되어 여러 싸움에서 짐을 욕보이고 수많은 우리 장졸들을 죽였다.그놈을 사로잡기만 하면 수레로 사지를 찢어 죽인 뒤에.... 하후영:시위에 얹혀 당겨진 화살은 시위를 놓으면 날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남의 신하된 자는 각기 그 주군을 위해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계포가 폐하를 욕보였던 것은 그의 죄가 아니라 그의 주군 항우에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천하의 주인이 되셨으니, 그 천하를 편히 다스리기 위해서는 전보다 더 많은 현능한 이들이 필요합니다. 지난날 계포가 폐하를 욕보인 것은 달리 보면 그만큼 그가 현능했다는 뜻도 됩니다.그런데 폐하께서는 그 현능을 거두어 쓰려하지 않으시고,오로지 잡아 죽이려고만 드십니까? ![]() 유방 : 그래, 계포가 관동 대협이라 불리는 朱家가 돌보고 있다는 것이냐? 하후영 : 그러하옵니다. 그가 신에게 계포의 일을 일러주고 아울러 폐하의 관대하신 처분을 빌어 보게 했습니다. 太僕(태복)으로 자신의 수레를 몰며 언제나 함께 싸움터를 내달려 온 등공 하후영이 계포를 위해 간곡하게 빌자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자는 글로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은 힘으로 나라가 금하는 것을 어긴다(儒以文亂法 而俠以武犯禁)고 들었다. 설령 그 협행으로 이름이 높다 해도 나라가 천금을 걸고 찾는 죄인을 숨겨 준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헌데, 주가는 하후영이 보잘것없는 縣吏(현리)로 지날 때부터 교분을 터 왔고,그 후로도 여러번 俠氣(협기)를 내어 도와준 적이 있었지만 유방이 한왕이 되고 천자의 자리에 오름에 따라 하후영 또한 등공에 여음후로 높아지면서부터, 주가는 하후영 근처에 얼신도 하지 않다가 어느날 하우영을 찾아온 주가가 술상을 차린 자리에서 하후영에게 물었다. 주가 : 계포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황상께서 저토록 큰 상을 걸고 급하게 그를 찾고 계십니까? 무릇 남의 신하된 자는 각기 자신이 임금으로 섬기는 이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계포 또한 그러하니, 그가 항우를 위해 충성을 다한 것은 다만 그의 직분을 성심껏 따른 것뿐입니다. 그런데 황상께서는 자기의 직분을 다하느라 폐하께 맞선 죄로 항우의 신하를 모두 죽이실 작정이십니까? 지금 황상께서는 천하를 얻으신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널리 인재를 모아 천하를 경영할 생각은 않으시고, 어찌하여 사사로운 원한으로 남의 충신을 뒤쫓게 하고 계십니까? 이는 황상의 도량이 좁음을 서서로 만천하에 드르내 보이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옛적 초나라 평왕은 오자서를 미워해 내쫓았다가 오나라의 장수가 된 자서에게 초나라의 도읍이 짓밟히고 자신은 무덤이 파헤쳐져 그 시체가 매질을 당했습니다. 등공께서는 어찌하여 황상께 이 일을 바로 말하지 않고 남의 일 처럼 보고만 계십니까? 그리하여 하후영은 계포의 용서를 주청하여 용서받고 중랑장으로 기용되었으며 주가는 이 일로 다시 한번 협객으로서의 이름을 떨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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