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릉산"곡의 뜻은 때는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여섯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야심을 품고 제일먼저 한(韓)나라 부터 공격한다는 작전을 세웠는데..... 한(韓)나라 간신"협루"는 사리사욕을 위하여 조국을 팔아넘길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충신 "엄중자(嚴仲子)가 "협루"를 탓하다가 오히려 망명하게 된다. 제나라로 피신한 "엄중자"는 의협심이 강한 "섭정"을 알게 되고, 그 "섭정"은 한나라로 들어가 매국로 "협루"를 척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협루"를 척살에는 성공하였으나, 한나라에서 이미 탈출이 불가능해진 "섭정"은 자신의 눈.코,귀를 자르고 얼굴을 어깨버린 뒤 목을 찔러 자결한다. 한나라에서는 그의 시체를 노상에 효수하고 현상금을 걸어 신원을 밝히려했다. "섭정"에게는 단 한분 누님이 계셨는데, 아우는 내가 연루되는 것이 두려워 얼굴을 망가뜨리고 갔다고 생각하여 지체없이 한나라로 달려가 자객의 신원을 밝히고는 동생의 명예로운 이름을 세상에 알린 뒤 누이도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 그 노인은 여기서 "광릉산곡(廣陵散曲)의 종장이라며 거문고를 물린다. 다 듣고난 "혜강"은 몸을 떨며 울었고, 그 뒤부터 "광릉산곡"은 혜강의 18 번 곡이 된다. 어느 재벌이 혜강에게 10만금을 내어놓고 "광릉산곡"을 한번 듣기를 청했을 때 거절했고, 높은 지위의 대신들은 七賢들을 회유코자 그에게 접근했을 때는 대꾸조차 하지않고 대나무숲으로 숨어버렸다. 끝까지 거절하던 혜강은 날조된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장으로 끌려 나가게 되는데, 고관대작들이 그렇게 듣기를 바랐던 "광릉산곡"을 그때 탄주했다. "너희들 들려주려고 탄주한 것이 아니라 저승가는 길동무를 위해 한곡 탄주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혜강은 그렇게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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