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57. ■ 胡亥 皇帝와 趙高

동천 2010. 2. 8. 20:36


■ 胡亥와 趙高


李斯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눈물이 뺨을 적셨다.

亂世에 태어나 이런 치욕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李斯는 끝내 조고의 뜻에 同意하고 만다.


그리하여 승상의 이름으로 公子 胡亥를 太子로 받들 것을 발표하고
변방에 있는 큰아들 부소에게 始皇帝의 이름으로 허위 조서를 띄워
자결케 한다.

이러한 일연의 조치가 끝나자 비로소 始皇帝의 죽음을 公布하게 된다.

B.C. 210年 9月,始皇帝의 유해는 역산에 묻었다.
역산은 始皇帝의 즉위 때부터 묘지로 결정되어 그때부터 工事가
시작되던 곳으로서 그가 天下統一 이후에도 사형수 60餘萬 名을
동원하여 工事를 계속했다.

땅속 깊이 3층의
수맥을 파고 들어간 곳에
墓室이 마련되고 동판을 두껍게
깐 위에 관이 안치되었다.
墓의 안에는 궁전을 만들고
제관의 자리도 마련했다.

또한 宮中의 보물창고에서
진귀한 모물을 날라다가
그 속에 진열하고 이를 훔치려는 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동 발사장치로 된 활을 만들었다.
또한 수은으로 백천,강 및 대해를 만들어 기계장치에 의하여 자동으로 수은 줄기가 돌아 흐르도록 했다.

천정에는 天門을,바닥에는 地理를 그려 넣었다.
묘실을 밝히는 불의 연료로는 오래 꺼지지 말라는 뜻으로
인어의 기름을 사용했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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