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59.■ 一葉蔽目 不見太山

동천 2010. 2. 8. 20:48


■ 一葉蔽目 不見太山


B.C. 209年 4月,

나라 안을 순행하던 2世 皇帝가 돌아와 始皇帝가 발주한 아방궁 공사를 완공하고자 전국에 대 동원령을 내려
5萬名을 징집하고 이를 함양의 둔영에 상주시켜
활쏘기등의 훈련을 연마케 했다.

하여,
軍用馬 等의 사료와 수송 비용은 징발된 농민에게 자부담 시킴으로써 함양을 중심으로 한 주위 300리 以內의
농민은 심각한 식량난에 빠졌다.

B.C. 209年 7月(2世 皇帝 2年),
마침내 楚나라 지방에서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켜
함곡관을 넘어 회 땅까지 이를때에는 10 萬名을 헤아려
수도 함양을 위협했다.

이에 2世 皇帝는
장한을 상장군으로,
사마흔과 동예를
부장으로하여

역산에 始皇帝능의 墓役으로 동원되었던 죄수들을 끌고 나가,
진승은 성보에서, 항량은 정도에서 죽임으로써
반란군을 진압하게 된다.

반란군이 진정된 후에 조고가 2世 皇帝에게 건의한다.

원래 天子가 짐이라고 칭하는 것은
朕(짐:징조)을 보인다는 뜻에서 입니다.
앞으로 폐하께서는 대신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음은 물론 목소리도 들려 주시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一葉蔽目 不見太山 : 가랑잎이 눈 가리면 태산도 못보고
兩豆塞耳 不聞雷霆 : 콩알이 귀 막으면 우뢰소리도 못 듣는다
하는 옛말대로 서서히 나라가 亡하는 징조가 싹터기 시작한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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