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58.■ 胡亥 皇帝와 趙高

동천 2010. 2. 8. 20:42


■ 胡亥와 趙高


2世皇帝 胡亥는

先王의 後宮 가운데는 아이를 낳지 않은 女人들이 많다.
이들을 그대로 後宮에서 보낼 수 없다하여 모조리 自決을 命令했다.


秦始皇의 유해가 매장된 후,墓道의 中間 門을 닫을 때 바깥 門도 닫아 버려 기술자들이 모두 그 속에 갇혀 생죽음을 당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墓地에는 草木을 심어 겉으로는 보통 산과 다름없이 보이도록 위장 했다.

이렇게 장례가 모두 끝나자 胡亥는 2世皇帝로 즉위하였고, 그는 즉위 일성으로

歲月의 흐름은 달리는 六頭馬車를 타고 갈라진 벽사이를 보는 것과 같으니.짐은 天下의 쾌락을 마음껏 즐기다가 一生을 마쳤으면 한다 "

당장 實權을 쥔 趙高가 맞장구를 친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그렇게 하시려면 우선 법을 엄히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여, 그 두려움을 백성들에게 알려야 하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先帝때부터 벼슬해 온 신하들을 모조리 물러나게 하시고 폐하의 마음에 드는 새 사람들을 등용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모두가 폐하를 위해 獻身하고 政治에도 힘쓸 것이므로 폐하께서는 모든 것을 맡기시고 平生을 쾌락으로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皇帝는
"허허 ! 그거 참 옳은 말이로다." 라고 했다니,

不知其子 視其友 : 자식을 모르겠거던 그 친구를 보고
不知其君 視其左右 : 임금을 모르겠거던 그 측근을 보라
고 말한 筍子의 말이 이를 두고 한 듯 하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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